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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Apr 13. 2019

아찔할 정도로 외로웠던 때가 있다.

난 해군에서 어학병으로 복무했다. 사실 우연찮게 어학병이 된 케이스였는데, 당시 입대 전 가장 잘 본 토익이 850점이었다. 운이 좋게도 해군은 어학병 점수 커트가 타군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기에 최저를 넘기고 어학 갑판으로 선발됐다.


그때 어학병 동기들은 하나같이 화려했다. 전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 유학생이던지 토익 980이나 아예 외국에서 태어난 애들 천지였다. 나만, 나 혼자서만 국내파 850점짜리 어학병이었다.


배는 큰 배를 탔다. 구축함에 발령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미 연합훈련을 준비하게 되었다. 노란 막대기 하나인 내가 이런 훈련에 통•번역 자원으로 들어간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다. 물론 처음엔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며 훈련 날짜가 가까워질 때마다 뿌듯함은 점점 바래져갔다.


긴장되는 훈련 전 날, 온갖 통신 부호를 비롯한 약어를 외우며 잠을 아꼈다. 나의 실수가 곧 훈련에 큰 영향을 끼칠까 봐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비몽사몽 한 채 일어나 조별 과업을 마치고 출항 15분 전 방송이 울렸다. 우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홋줄을 걷었고 작업이 끝나고 나선 당직 교대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밤이 되었다.

 

숨이 막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내게 온갖 기대를 거는데 내가 부응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긴장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힘들다, 긴장된다, 어떡하냐 등등 지금 이 심정을 모두 표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함정 내에선 출항 중 전화 사용이 불가능했다.


심장은 쿵쾅 거리고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 그렇지만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었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지만 내 머리는 허락지 않았다. 공감도 못해줄 고민거리를 털어서 내가 좀 나아지겠나 싶어서, 애 먼 사람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해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아찔한 벼랑 위, 잡아줄 사람은커녕 잡고 버틸 나뭇가지 하나 없는 신세였다. 철저히 고립되어있는 느낌, 외로웠다. 시야는 좁아지고 이 공간엔 나뿐이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 더군다나 일주일 남짓되는 시간 동안 이 심정을 짊어갈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써 웃으며 사람들을 대했던 것이다. 농담을 치면 받아주고 아무 일 없는 것 마냥 행동하는 게 나에겐 깨나 고역이었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교대 시간, 난 전 당직자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헤드셋을 꼈다. 혹시나 교신이 올까 노심초사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첫 교신이 왔다. 노트에 휘갈기며 받아 적기를 반복하고 당직사관의 말을 영어로 통역했다. 사람이란 게 그렇듯, 정작 상황을 맞닥뜨리면 긴장은 사그라들게 된다. 어느덧 몇 시간을 견뎌내고 나의 첫 연합훈련 당직이 끝이 났다.


연합훈련 개시 첫날,  외로웠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당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혼자 끙끙거렸던 게 과연 잘한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요즘 들어서도 외로움을 느낄 때, 누군가에게 말 못 할 고민이 많을 때마다 난 이때를 생각한다. 그때처럼 조금만 더 견뎌내자고,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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