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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관찰일기

일지를 토대로 살펴본 나의 심리상태

그렇다. 나는 공부하기싫어병 1.5기 환자다. 앞서 작성했던 글은 싫어병 질환 자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작업이라기보다는 노력이다.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모형을 살펴보고 무엇이 모형을 구축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한다. 때문에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질환자인 나 자신의 양태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에서 또 하나의 증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쓰라는 논문은 안 쓰고 브런치 글쓰기나 하고 앉아있네”인 것이다. 이 행동 하나만으로도 내 자신이 싫어병 환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도 아닌데 증명까지 하려니 슬프다.


통상,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는데 1차적인 방법은 문진이다. 환자분, OO이 불편해서 오셨군요. 어떤 증상인지 말씀해보시겠어요? 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내 자신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기에 나는 매우 지쳐있고 또 부끄러우므로, 일지(日誌) 형식의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매의 눈을 가지고 그(녀)의 24시간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이 에너지를 논문에 제발..)


1기의 전형적인 증상을 “일상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높은 빈도로 발생”, 1.5기의 증상을 “말귀를 못알아처먹음”으로 기재했었는데, 그렇다. 요즘 나는 사람들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2초 후) 네???”가 그렇게 많이 튀어나올 수가 없다.


나는 누가봐도 명백한 넵무새였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넵무새 뜻풀이 이미지이다. 출처를 모르고 끼워넣는게 영 찝찝하다.

위 정의에 의하면 “얼굴은 무표정인게 특징”이라는데, 나는 표정까지 든든한 넵무새였다. 저 앵무새의 초롱초롱한 눈알처럼.


그러나 요즘의 나는 물안개낀 해안도로를 달리는 이륜차와 다름없다. 갑자기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배경음악인 안개가 떠오른다. 박찬욱 감독의 안개는 정훈희 가수의 버전과 정훈희·송창식 듀엣의 버전, 두 가지로 나타난다. 나는 트윈폴리오의 버전을 좋아한다.


그렇다. 한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끝맺음을 하지 못하는 것도 특징적인 증상이다. 오늘 일기의 상단에 ’극복‘이나 ’노력‘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어쩌면 나의 작고 귀여운 의지를 표면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었는데, 또다시 한발자국 멀어진다.


오늘, 회사에서 제출할 자료를 기한(금일 퇴근시..) 내에 마쳤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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