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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Apr 20. 2022

33일차_평생명함을 언박싱 해봤다

이름하야 '평생명함'


니트컴퍼니에 입사하게 되면 회사에서 명함을 만들어준다. 이 부분까지는 여느 회사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니트컴퍼니의 명함은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평생' 쓸 수 있는 명함이라는 사실이다! 


퇴사하고 나면 가장 쓸모없어지는 물건이 바로 명함이다. 근무 중에는 업무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명함을 주고 받을 일이 많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그럴 일도 없어진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내가 하던 업무도 더 이상 나를 증명해줄 수 없으니까. 즉, 내 존재를 설명해주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니트컴퍼니의 명함. 굉장히 본새난다. 스티커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니트컴퍼니에서 만들어준 명함은 이른바 '평생명함'이다. 니트컴퍼니를 퇴사하더라도 명함은 평생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자신이 정한 업무에 따라 본인 직급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트컴퍼니의 업무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나같은 경우에는 니트컴퍼니를 다니는 동안만큼은 하루에 1개씩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업무를 설정했다. 


니트컴퍼니의 생활을 쭉 해오면서 느낀 건, 단지 내가 글만 쓰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외주도 받고, 공모전 준비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부수 업무로 정하고 지냈다. 그래서 직급을 정할 때 단순히 작가라고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율근무기획본부 기획팀장'이라는 직급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명함 실물이 더 마음에 든다! 




명함이 가지는 의미


퇴사 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가 '내 존재의 쓸모없음'이었다. 단지 회사를 다니지 않을 뿐인데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내다보면 가끔 사람들이 '무슨 일 해?' 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구구절절 나의 상황에 대해 최대한 무난한 단어들을 골라 설명해야 하고, 듣고 있는 상대방은 '백수라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민망한 상황을 계속 겪다보니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지곤 했던 것이다.


정해진 직장이 없어도 할 일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시기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나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내 상태가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 모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마음이 불안하니 행동이 더 두서없이 엉키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툭하면 하루 루틴이 무너지거나 잘 하던 일도 '해서 뭐하겠어'라며 팽개치게 되니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겼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해준 점에서 니트컴퍼니의 생활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 혼자서 일을 하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출퇴근과 업무인증까지 하면서 일하는 것이 꾸준히 하는 데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무슨 일 해?'라고 물어봐도 기죽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명함까지 생겼으니 설명하는 게 더 어렵지는 않겠다. 나는 내 할 일 자유롭게 하는 자율근무기획자니까.


명함, 그게 뭐라고 그렇게 의미부여를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 명함은 그냥 한 끗 차이다. 하지만 그 한 끗이 사람의 상태와 태도를 달리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작가님은 자기가 직접 명함을 파서 누군가에게 소개할 일이 있을 때 건넨다고 했다. 작가라는 직업도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할 때에는 명함 만한 게 없다. 나는 작가님의 당당한 애티튜드가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차마 나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생각은 많고 실천에 더딘 나에게 멋진 평생명함을 만들어주신 니트컴퍼니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의 상태 결정권


예전엔 내 상태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상황을 바꾸는 데에 집착했던 것 같다. 학교라도 다녀야 될 것 같고, 회사에 취직이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게 아니면 공무원 시험 준비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내 노력과는 별개로 상황이 내 마음처럼 흘러가주진 않았다. 갑자기 아파서 하던 일을 그만둬야 할 때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터진 전염병 사태 때문에 재취업이 더욱 힘들어질 때도 있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 꽤 오래 스트레스 받았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상황만 놓고 보자면 나는 여전히 다니는 직장이 없고 그렇다고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니트족'일지도.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내 인생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게 아니다. 세상의 시간에 맞춰 내 삶도 계속 굴러가고, 매일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스스로 정하고 지켜나간다. 이런 나의 구체적인 상태를 정의하는 말은, 딱히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직장 없고 소득 없으면 백수'라고 뭉뚱그려놓으려는 목소리에 움츠러들지 않으려면 내 상태는 내가 결정해야겠다.


자율근무기획본부 기획팀장이자, 자율근무기획자.


상황은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적어도 내 상태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이끌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명함에 직접 정해 새겨넣은 '자율근무기획자'라는 직급처럼, 자유롭게 내 할 일을 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상태로 지내고 싶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대접해야 세상도 나를 존중하고 대접한다고 믿는다. 이번에 니트컴퍼니에서 받은 명함은, 자기 존중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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