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간회의 때는 '나에게 인사이트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처음에는 인사이트가 뭔지 몰랐는데, 영감을 주는 매개를 뜻한다고 설명해주셨다. 흠, 워낙 관심사가 잡식이라 오만가지에서 영감을 얻는 나로서는 팀원들에게 추천할만한 게 처음부터 딱 떠오르진 않았다. 그래서 우선 팀원들의 다양한 인사이트를 들어보았다.
팀원들이 영감을 얻는 매개는 다양했는데,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유튜브였다. 유튜브라는 플랫폼 안에도 다양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있기 때문에 어떤 채널을 구독하는지, 어떤 콘텐츠를 보는지에 따라서도 취향이 각기 달랐다. 팀원들의 다양한 채널추천에 정신없이 구독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영화 추천과 동시에 다양한 플랫폼 추천도 받았는데, 여러모로 유용할 것 같아서 메모해두었다. 그 외에도 네이버 블로그, 뉴스레터, 잡지, 팟캐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이트를 소개받아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드렸는데, 막상 소개하려고 추려놓고 보니 추천목록에 일관성이 없는(공포라디오, 고전작품 큐레이션, EBS라이프스타일, ASMR 등) 느낌이었다.괜히 부끄러워서 추천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이니 용기를 내서 추천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횡설수설하느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리있게 말하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렇게 서로의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나니 내가 아는 세계의 영역이 좀 더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관심분야 외에는 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어서 오랜만에 뇌가 유연해진 기분. 역시, 니트컴퍼니에 입사하기로 결정한 건 신의 한수였다. 우물 속 개구리가 되어 같은 하늘만 바라보던 나에게 다채로운 하늘을 보여주는 동료들이 생겼으니까. 어쩌면 우물모양 하늘만이 아니라 더 넓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해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속의 내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전에는 단순히 사회의 입맛에 맞는 인간형에 나를 끼워맞추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각자의 모습을 존중받으며 자신의 활동영역에서 살아가는 이들 속에서 온전히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게 됐달까. 사회가 원하는 개인이 아닌, 그냥 나일 수도 있을까? 그럼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을까? 방향을 찾아보기 위해 나는 크게 두 가지의 가닥을 잡았다. 하나는 Why다. 또 다른 하나는 How다.
나는 왜 사는가? 이것이 나의 Why다. 누군가는 허황된 질문이라고 할 수도,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은 중요하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인식은 있어야 가고 싶은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정한 Why는 이렇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채로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것이 없고, 복잡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살아갈 많은 날들이 있고, 좀 더 삶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부한 감각이 필요할 것이다. 감각을 최대한 발달시켜서 삶을 더 누리고 싶다. 감각을 발달시킬 때는 좌충우돌 할 수 밖에 없으니, 지금의 방황도 언젠간 나만의 감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나의 How다. 이건 모든 사람들의 인생 고민일 것이다. 살아지는 대로 살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고, 개개인의 삶과 가치가 주목받는 시절이니까. 나라는 사람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정한 How의 큰 틀은 '기록자'이다. 나는 기록의 힘을 믿는다. 인간의 망각을 보완할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니까. 그리고 나는 뭔가를 끊임없이 작성하는 행위가 좋다. 그래서 평생을 기록자의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작가로 살아가는 삶을 언제나 동경하고 추구한다. 쓰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을 열어야 한다. 넓은 마음도 필요하다. 파이팅 넘치는 태도까진 성격상 바랄 게 못 되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다짐의 시간이다.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겠다. 정답이란 하나의 정해진 결과를 뜻하는데, 삶은 하나로 정해진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정한 나름의 의미는 둘 수 있겠다. 정답을 가지는 것과 의미를 두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정답은 정한 순간 고정적이지만, 의미는 변화에 유동적이다.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의미를 두는 것이 나에겐 더 잘 맞는 것 같다.
언젠가는 지금 의미를 부여한 Why와 How가 또 달라질 수 있겠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끊임없이 깨지고 그 바깥의 새로운 세상으로 확장되니까. 이렇게 말하고서 잘 가는 것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 주저앉거나 방향을 잃고 헤맬 수도 있겠다. 예전엔 남들이 가는대로 따라가지 못할까봐 불안했지만, 지금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내 삶은 학교 현장체험학습 같은 것이 아니니까. 정해준 것만 보고 정해준 대로 갈 시기는 이제 지났다.
즐거운 여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