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이 유독 나를 괴롭히는 날이 있다.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신 것도 아니고, 딱히 과식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 속에 커다란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잠들지 못하는 밤. 무드등 하나를 촛불처럼 은은하게 켜두고 명상 호흡법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하지만 울적한 마음을 떨쳐내기 쉽지가 않다.
오늘은 잘 살았던가? 특별히 바빴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생산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단 낫다고 믿고 싶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업무리스트에 해야 할 일들을 중요도 순서대로 나열해두었다. 그때, 문득 꼬리를 무는 질문 하나. 이게 내 삶에 정말 의미가 있는가?
의미, 그놈의 의미! 생각 많은 나를 가장 철학적으로 괴롭히는 질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는 것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하지 말라고. 순간순간 즐기면서 살면 된다고. 매사 근심 걱정 가득하고 예민한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나는 아버지를 너무 많이 닮았기에 툭 던진 말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버지도 내 나이대에는 수없이 잠 못드는 밤을 보내야 했겠지. 보이지도 않는 의미에 집착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끝내 환갑 넘게 살아보니 의미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는 모순을 발견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우울하게 하는 생각들을 끝내 놓을 수가 없었다. 밤의 어둠이 짙어지는 만큼 내 마음 속 우울도 짙어졌다. 침식당하는 기분. 어쩌면 나는 우울중독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감정을 손님 대접하듯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한 감정이 내 마음에 찾아왔을 때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쉬게 해서 자연스럽게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라고. 드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여기라는 현명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마음에 찾아온 우울은 엉덩이가 제법 무겁다. 아무리 먹이고, 아무리 재우고, 아무리 쉬게 해줘도 도무지 떠날 생각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여기가 좋다며 눌러 앉아 살 요량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동거를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병원에도 가고, 상담도 받고, 명상도 해보지만 잠시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눌러 앉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쫓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부정적인 감정 범주에 속하는 우울과 공존하겠다는 발상이 제법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쫓아낼 수 없다면 방에 세를 주고 나름의 방식대로 써먹는 편이 좋겠다는 생존전략이다. 기분이 좋거나 즐겁거나 설레거나 하는 긍정적인 감정이 들면 쉽게 붕 떠버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달랠 때에는 우울 만한 것이 없다. 또, 작품을 쓸 때에는 깊은 고찰이 필요한데 이 때도 우울 만한 것이 없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우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상들도 꽤 섬세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우울의 덩치가 너무 커지면 일상에 마비가 올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에 잡아먹혀서 며칠씩 밑도 끝도 없이 울적하게 보내기도 한다. 나는 이 과도기를 '우울중독'이라고 부른다.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가볍지만,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우울의 농도가 짙은. 우울을 내쫓을 수도 없지만, 또 우울 없이 생활하기 두려운. 이 애증의 과도기를 지나고 나면 꽤 괜찮은 식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좀 우울할 수도 있지. 생각이 좀 많을 수도 있지. 힘들 수도 있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때로는 뭘 해야 좋을지 모를 수도 있고, 마음이 마음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매사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면 나만 힘들다.
내가 백날 천날 힘들어봐야 알아주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다. 손해보는 사람도 나뿐이다. 아버지의 말대로 너무 의미부여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면 그뿐이다. 잘 되면 좋은 거고, 잘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버지는 지나간 세월을 쓸데없이 과한 걱정으로 낭비한 걸 후회한다고 하셨다.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데, 걱정한다고 딱히 일이 더 좋게 풀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전전긍긍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맞는 말이다. 내가 이런걸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뜯어고칠려고 전전긍긍하면서 세월을 보낼 필요는 없다.
마음은 농부처럼 가지는 게 좋다. 때가 되면 밭을 갈거나 농작물을 심어 수확을 준비하고, 비가 오면 막걸리에 파전 먹으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농작물 심겠다고 설쳐봤자 될 것 없고, 비가 올 때 '비가 안 그치면 어쩌지'라며 걱정해봤자 비가 그치진 않는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살되, 때가 되면 때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