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다람쥐 Apr 01. 2016

'돈'에만 매달리고, 양심은 없는 신문

"기사는 쓰지 말고 각 지방 공기업 본사 돌아다니면서 홍보팀 하고 인사만 해. 너 출입처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는 다른 기자들한테 넘기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 부장이 나에게 지시했던 내용이다. 저 말에는 생략된 내용들이 있다. 아래 괄호 안에 들어간 단어들이 생략된 내용이다.


"기사는 쓰지 말고 각 지방 공기업 본사 돌아다니면서 홍보팀 하고 인사만 해. (왜냐면 내가 광고 영업을 하려면 친분관계가 필요한데 내가 홍보팀 사람들을 전혀 몰라서 네가 나를 홍보팀 하고 연결을 시켜줘야 해.) 너 출입처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는 다른 기자들한테 넘기고(너는 홍보팀만 만나고 전국을 돌아다녀)."


기자는 기사를 쓰는 사람인데 기사를 쓰지 말고 담당 공기업 홍보팀만 만나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것만 하라고 한다. 물론 새로 출입처를 배정받으면 언론을 담당하는 홍보팀과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때는 담당 기업 직원들을 만나면서 기업과 관련된 정보도 얻고, 보도자료가 나오면 관련된 사항을 문의하며 확인하는 작업도 한다. 그러면서 많은 기사를 쓰게 된다. 이런 과정이 시간이 흐르며 계속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이 형성되는 것은 굳이 언론이 아니더라도 어떤 업종에서든 함께 일하는 관계라면 상식이다.



그런데 이전까지 회사에서 전혀 담당하지 않던 곳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광고 혹은 '협찬 기사(이와 관련된 내용은 추후 다른 글로 설명하겠다)'를 따내기 위한 목적으로 홍보팀과 관계만 형성하고 기사는 쓰지 마라는 지시, 이해가 되는가?(이런 일은 광고 영업 직원이 더 잘하지 않을까? 내가 아닌 영업 직원이 전문가이니 광고는 오히려 정상적인 방법으로 잘 따낼 수 있을 거다. 참고로 이 일이 있은 후 난 회사를 그만뒀다. 언론계도 떠났다.)


물론 언론사마다 각자 사정이 있어 기사를 쓰지 않는 위치에 있는 기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회사의 장기 콘텐츠 개발이나 다른 부서 파견 업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이런 식은 아니다.


현재 한국 신문사에서 차장, 부장이 되면 대부분 '광고 매출'에 매달려야 한다. 각자 월별, 분기별, 연도별로 할당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야 한다.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그들은 인센티브를 받는다.(평기자들이 여기에 간혹 기여를 하더라도 평기자에게 떨어지는 것은 한 푼도 없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부장들은 자기 부서원들이 올린 기사 데스킹(기사가 출고되기 전 최종적으로 기사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기사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과정)도 해야 하고 부서원 관리도 한다. 하지만 온 신경은 광고 매출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회사 경영진 입장에서는 '좋은 기사'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 매출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명도 광고 매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현재 한국 신문사들이 광고 매출에 매달리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업을 해서 별도 주 수입원이 있는 신문도 있고, 모기업의 재정이 탄탄해 광고 매출에 신경 쓰지 않고 기사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곳도 간혹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신문들은 점차 종이신문의 구독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광고 매출에만 매달리고 있다.

인디펜던트 홈페이지 캡처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전체 신문광고 시장의 규모는 비슷하거나 점차 줄어드는 상황인데 언론사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소위 메이저 언론사들 외에도 신생 매체들까지도 기업들에게 광고를 요구한다.


기업들은 난감하다. 어디에만 광고를 주고 어디는 주지 않는다면 추후 광고를 받지 못한 언론사에게서 '조지는 기사'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광고 효과가 극대화되는 곳에만 광고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매체력이 큰 곳에만 광고를 하려고 한다. 당연하다.

물론 기업이나 정부부처, 공기업 등 이들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을 받아야 하고,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언론이다. 그러나 일의 순서가 바뀌면 상황은 달라지고, 문제가 터져 나온다.


예를 들어 A기업이 분식회계 및 횡령을 했고, 이를 취재를 통해 기사로 발굴했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신문사가 A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지 못해 화가 났고, A기업 담당 기자인 B를 시켜 취재거리를 '억지로' 찾으라는 지시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B기자는 A기업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실제로도 A기업은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과 회사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B기자는 A기업이 옛날에 잘못해서 이미 보도가 됐던 '케케묵은' 내용을 마치 새로운 내용인 것처럼 포장해 보도하게 된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많다. 그러면 A기업은 해당 언론사에 연락을 취해 수습에 들어간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최근 종이신문 발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곧 목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진은 BBC 캡처.


언론계에서 아주 유명한 '산업부장'이 있다.(언론사에서 경제부처와 유관기관, 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부서는 '경제부'다. 경제신문들은 이를 더 세분화해 '산업부' '생활경제부' 등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그는 연차도 꽤 됐는데 기사를 못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히려 수습기자가 더 잘 쓸 것 같다. 그는 보도자료는 '복사하기-붙여넣기'로 쓰고 즉시 출고한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지금 내 전화 한 통이면 광고받아내는 게 일도 아니다. 만약에 (광고) 안 주면 몇 번 조지는 기사 쓰면 된다. 영업이라면 난 자신 있다."


이것은 과장이 전혀 보태지지 않은, 현장에 있던 다수에게서 내가 직접들은 그의 실제 워딩이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이 사람의 발언이 언론사 부장이 후배들에게 할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는 예전부터 억지로 기업과 관련된 비판기사를 써서 기업으로부터 소송까지 당하기도 했다(이 부장이 썼던 기사들은 읽는 사람들이 모두 혀를 찰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불행하게도 현재 그는 아직도 언론계에 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한국 신문사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점차 이런 행태가 많아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열정을 갖고 언론계에 발을 들인 주니어 기자들은 중간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출입처에서는 '도대체 회사가 왜 그러는 것이냐'며 항의하고, 회사에서는 '더 강한(내 생각엔 '자극적'이라는 말이 어울려 보임) 야마(주제)를 잡아와라'라고 시키니 담당 기자는 중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차피 기사에 나오는 바이라인은 기자의 이름이니깐.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 관행과 경영 방식만을 유지하고, 경영진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망가져 가는 언론사들이 많다. 광고 수입에만 의존하는 언론사도 미래가 없긴 마찬가지다.


신문이 해야 할 좋은 기사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 곳이 많다. 새롭게 생긴 매체일수록...


기자를 그만둔 입장에서 언론사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무리한 돈 욕심은 부리지 말고, 그 욕심을 새로운 수입원을 찾는 데로 돌리길 바란다. 그리고 기자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매체력을 높일 수 있는 기사를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매체에 대한 평가는 점차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던 부장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게 살지 말길 바란다. 양심과 상식이 있다면 그런 일은 하면 안 된다. 언론인, 기자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만은 지키길 바란다. 광고를 따내려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해라. 자기가 밑에 두고 있던 기자들이 계속 떠나간다면 본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지금 후배들을 닦달해가며 얻은 매출 수입으로 받은 인센티브에 행복한가? 그렇다면 그 인생이 정말 불쌍하다. 어디 가서 기자라고 하지 마라. 당신들은 그냥 쓰레기다. 부디 언론계를 망치는 일은 앞으로 하지 말고 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어두운 미래, 그리고 떠나는 기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