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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17. 2024

2023년의 영화들

조금 다른 의미의 리스트

오랜 고민 끝에, 올해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베스트 10을 뽑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연히도 여러 번의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베스트 10을 뽑는 것은 단순히 영화들 사이의 서열을 정하는 것이 아닌 저의 한 해를 채워준 영화는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며 그 영화들에 감사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번 여러 한계를 느끼면서도 기꺼이 저의 한 해를 채워준 영화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때의 최선으로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그럼에도 올해 저의 리스트를 생략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작년에는 유독 다른 해들에 비해 제 마음을 울리는 영화가 많이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걸작이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만한 영화를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영화들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영화들에게서 정수를 찾아내지 못한 저의 무능력함에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충분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영화들, 이를테면 <애프터 썬>, <토리와 로키타>, <괴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한국영화 중에서는)<우리의 하루>와 <물안에서>, <비밀의 언덕>, <퀴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특히 <괴인>과 <컨버세이션> 같은 영화를 지나쳐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한없이 이 영화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는 다른 해에 비해 의미 있는 리스트를 작성하기에는 개봉한 영화들이 무언가 아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부족한 리스트를 억지로 만들 바에는 내년에 더 좋은 영화들을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번째로, 조금 더 결정적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최근 들어 영화에 대해서 별점을 통해 평가하고 상대화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전부터 별점에 대한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지속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제 별점은 저에게 단순한 인상 기록에 불과할 뿐, 그 영화에 대한 가치 판단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곧바로 별점에 대해서 생각하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영화의 완성도 자체보다는 영화가 저에게 남기는 질문들 자체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건 설사 실패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들 사이의 저의 선호도를 서열화하는 것에 어떤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고 베스트 10을 뽑는 것 역시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고민들을 거치면서 올해는 베스트 10을 뽑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조금 다른 의미의 리스트를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 해에 극장 개봉한, 혹은 OTT를 통해 공개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다면 올해는 그와 무관하게 제가 관람한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저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 10편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는 리스트를 작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리스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다시 원래의 방식대로 베스트 10을 고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렇듯이, 이 순간의 최선이라는 의미에서 저만의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며 이 영화들 사이에는 어떠한 서열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에 부여한 별점도 이 리스트에서는 큰 의미가 없음 역시 알려드립니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빅토르 에리세



<유레카>-리산드로 알론소



<마지막 국화 이야기>-미조구치 겐지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호수의 이방인>-알랭 기로디



<센난 석면 피해 배상 소송>-하라 카즈오



<나의 경우>-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안나의 랑데부>-샹탈 아커만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하워드 혹스



<까마귀 기르기>-카를로스 사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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