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독을 방해하는 노인이여, 기다리시오. 당신을 위해 살겠소. 당신과 당신이 될 나를 위해 미래를 아주 미약하게나마 바꿔보겠소. 당신도 혹은 나도 모를 수도 있소만, 어디 미래의 안녕과 영광만을 위해서 살겠소. 아버지여 보소,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독창적인 방식.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어떻게 독창적으로 끼어들 것인가, 영화 <기생충>의 그 가족들처럼 강자를 남겨두고 저들끼리 싸우는 방식을 독창적이라고 부르고 계시진 않는지요. 나는 다르오,라고 말하지 못하오. 완벽하지 않소. 대단하지 않소. 그저 미약하게나마 다른 방향으로 새로워지겠노라고. 내일 조금 새로워지겠노라고 말하오. 그 집에 살기를 목적하여 독창적인 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더라도, 당신들을 물이 잠기지 않는 집에서 안정과 평안을 아주 조금이라도 쏟을 수 있게 말이오. 그대들의 절망을 먹고 자란 우리를 보시오. 번데기에서 사족보행 동물과 동지가 되어 저 세계를 넘어보는 우리를 보시오. 우린 그저 웃을 것이고, 당신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주 요상하고 낯설고 기괴한 변혁과 전복을 목격할 것이오.
전복을 두려워하니까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오면 전복된다고 두려워하니까요.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오. 새벽 나절의 참새 소리, 나는 이미 변혁을 목격하였소.
과거에 사로잡힌 망령과 미래를 체념하여 긁어 붉어진 목덜미여 보시오. 나의 미소를 보시오. 슬픔이 자리 잡은 나의 미소와 기쁨이 공존하는 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