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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Feb 22. 2021

아무튼 폭력

(1) 2021년 2월 17일

 




 안주하는 이에게 하면 좋은 괴테의 명언, 이라는 글을 봤다. 나는 '괴테', 혹은 'Goethe'라는 단어친근하다. <파우스트>도 읽은 없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고 사랑이 더욱 멀게 느껴졌음에도 나는 괴테의 시를 외워본 있다는 하나만으로 그를 친근하게 여긴다. 괴테가 하늘에서 듣는다면 어리둥절하거나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신경 쓰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글을 보게 된 경위는 한 가지다. 이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라는 속삭임이 들렸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속삭임은 이전부터 들려왔고, 나는 이제 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내기 위한 글이 아닌 꼭 전하고픈 말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책을 내야겠다고, 2월 17일 이후의 나는 다짐했다.


  2월 17일 저녁 여섯 시. 작업실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진지한 글을 메모장에 써내고 자기혐오하면서 길을 나섰다. 진지한 얘기인데 너무 무거워. 무거우면 사람들이 안 읽잖아. 좀 더 잘 써야 돼. 좀 더. 좀 더. 내가 책을 낸다고 누가 읽기나 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 실타래를 꼬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었고, 그날은 미국과 시카고의 전력이 동결될 정도로 극심한 한파가 내려온 날이었다. 한국도, 그리고 내가 걷고 있던 골목도 한기와 칼바람이 예리하게 휘젓고 있었다. 기사도 정신의 검객이라기보다 폭군의 칼부림 같았다. 목도리 매고 올 걸. 중얼거리며 입고 있던 하얗고 두터운 점퍼를 목 끝까지 잠갔다.


  10m 정도 걸었을까. 한기를 느낄 새도 없이 앞에서 중년 남녀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술에 취해 마스크도 쓰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목이 쉬어 있었다. 비염과 술이 합치면 저런 소리가 나는가. 아연 질색했다. 여자는 키가 아주 작았다. 내 키가 160인데 내 눈께나 올 정도였으니 작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가는 욕설과 살벌한 기운은 골목을 베어 휘젓던 칼바람도 끼어들 수 없었다. 나는 약간 물러서서 살곰살곰 지나갔다. 여자는 남자와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고, 등을 돌려 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남자가 달려들었다. 한강을 경쾌히 달리는 러너들. 경보를 하며 팔을 힘차게 흔드는 아주머니들의 걸음보다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나는 '위험!'이라고 알람 경보가 머리에 번쩍이는 감각을 느꼈다. 그 순간에 둘 사이를 막았다.


  하얀 북극곰 인형 같은 여자가 둘 사이에 짠, 하고 등장하니. 남자는 어리둥절하고 황당한 눈치였다. 남자가 여자의 목덜미를 채려던 순간에 내가 온몸을 사이에 끼워 넣고 막은 것이다. 남자의 얼굴을 빠르게 흘긋 본 나는 여자를 감싸 안는 모양새로 사이에 끼어있었다. 여자도 당황, 남자도 당황, 나는 침착했다. 남자가 다시 욕설을 뱉기 시작했다. 여자도 화가 나 반문을 하려고 할 때 내가 말렸다. 상대하지 마세요, 어머니. 가요, 우리. 내 말을 듣고 중년의 여자는 고갤 끄덕였다. 커다란 눈에 홧기는 금방 빠지고 두려움과 지치고 피곤한 기력만 남아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사이에 술기운과 감정이 격해져 싸운 일인 줄로만 알았다. 길 한복판에서 폭력이 일어날 뻔했으니 지나가던 사람이 막았고, 외부인이 끼어들 정도라면 남자 쪽에서도 분해도 참겠거니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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