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년 여성의 등을 옆에서 쓰다듬었다. 놀라셨을 것 같았고, 나도 거기서 끝일 줄 알았다. 흥분하고 술에 취하면 손이 나가는 사람을 뒤로하고 우리는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몇 발자국 걸어갔는데 빨간 패딩의 남성이 뒤쫓아왔다. 여자의 어깨를 잡으려고 해서 막았다.
중년 여성의 패딩 모자가 뜯어졌다. 모자를 돌려받으려고 했다. 빨간 패딩의 남자가 주지 않았다. 모자는 포기하고 다시 가려고 했다. 중년 남성이, 빨간 패딩의 남자가 다시 쫓아왔다. 우리는 사거리 골목에서 가고 오고 다시 가고 오고를 반복했다.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목적이었지만 빨간 패딩의 남자가 다시 쫓아왔다. 나는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우선 112에 전화했다. 경찰이죠, 폭행이에요!라고 말했다. 상황을 설명하기엔 빨간 패딩의 남자가 소리를 계속 질러댔다. 위치가 어디인지도 말하지 못했다. 전화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치 추적할게요! 위치 추적할게요!
나는 그 시간이 무척 길게만 느껴졌다. 3분이 30분 같고 30분이 3시간 같았다. 사거리를 몇 번이고 왕복하고, 중년 여성이 드디어 거리를 벌려 멀어졌다 싶으면 달려가서 잡고 나는 사이를 막았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근처 약국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중년 여성을 위해 문 만이라도 잠깐 잠가주길 바라며. 억지로 들여보내서 도와주세요, 경찰에 신고해주세요,라고 했다. 약국에는 세 명의 여자가 있었다. 약국의 키가 크고 마른 중년 여성이 말했다.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나가요!"
젊은 여자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키가 작은 중년 여성 분은 나를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잠시 어지러웠다.
*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횟집으로 중년 여성을 돌려보내려는 빨간 패딩 남자와 중년 여성이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물며 걸어가기라도 하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복되었다. 걸어가고 쫓아가고 막고 다시 피하고. 패딩 남자는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내 가방 끈을 뒤에서 끌어당기고 나는 뿌리치고, 빨간 패딩 남자가 내 어깨 옷을 끌어당기면 다시 뿌리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 번 제대로 막지 못해서 중년 여성의 목덜미가 잡혔는데 꽉 눌리며 잡히고 있었다. 아야야야! 여성이 아파했다. 남자가 "뭐가 아야 아야 이러노!" 라고 말했다. 나는 중년 여성의 옷과 남자의 손을 뜯어내듯 분리시켰다.
이제 중년 남성은 나를 향해 욕을 하며 삿대질을 하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네가 누군지 알아야겠다. 네가 누구기에 사이를 막는지 알아야겠다고 했다. 횟집으로 니도 들어가! 그러면서 옷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뿌리치면 다시 잡고, 뿌리치면 다시 잡기를 반복했다. 내 옷이 두꺼웠기에 다행이었다. 악력이 굉장히 셌다. 여름이라 얇은 옷이었다면 상의가 다 뜯어졌을 것이다. 혹은 남자보다 작은 몸집임이 고스란히 보여 정강이를 한 대 맞았거나 살갗이 그대로 드러난 팔이 잡혀 아팠을 것이다. 옷은 두꺼웠고, 온몸을 힘차게 돌리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중년 여성을 안는 방어 방식에서 패딩 남자를 마주하는 모습이 되었는데. 그때 '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을까 봐 무서웠다.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횟집 앞 철 울타리에서 내가 울타리를 잡고 잠시 대치상황이 벌어졌다. 빨간 패딩의 남자가 말했다. "네가 뭔데 참견이야! 정신 나간 여자야! 잘 해결할 수 있었는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막고 있었다. 나는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빨간 패딩의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계속 묻고 화내길 반복했다. 그러다 말했다.
"내 여자야!"
그때 내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왔다.
"이 사람은 니 소유가 아니야!"
내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소유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나도 내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빨간 패딩의 남자는 더 놀란듯했다. 말을 더듬거렸다. 뭐, 뭐, 소유, 뭐, 그, 내 여...
빨간 패딩의 남자는 다시 나를 치우듯이 밀고 중년 여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횟집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모자를 돌려주려고 했다. 우리 셋 다 지쳤고, 헐떡거렸고, 소강상태였다. 빨간 패딩의 남자가 횟집으로 다시 들어가라며 모자를 줬다. 중년 여성이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작은 키, 작은 목소리.
"미안해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횟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동안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가고 있어요! 가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얼른 와주세요...라고 말하며 울고 싶은 걸 참을 때 중년 여성의 등을 빨간 패딩의 남자가 밀어 횟집으로 넣었다. 나는 경찰을 기다리기로 했다. 중년 여성은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고, 빨간 패딩의 남자는 계속 중년 여성에게 화를 냈다. 경찰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때, 폰이 꺼졌다.
핸드폰을 충전하자고 횟집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무서웠고, 내가 핸드폰을 충전해서 경찰과 연락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다. 나는 근처 미용실로 들어갔다. 충전기를 빌리고자 했다. 거기 앉아있던 젊은 여자가 바로 말했다. 어떤 타입 충전기요? 내가 말했다. 갤럭시 씨 타입이요. 그때 중년의 미용실 여자가 나왔다. 집에 가서 충전하면 되지...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난 그때 약국의 키 크고 마른 여자가 내쳤던 일을 떠올렸다. 친구를 기다려야 하는데 갑자기 폰이 꺼져서 곤란하다고 했다. 경찰을 기다린다고 말할 수 없었다. 또 내쳐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이미 약간 깎여있었다. 폰이 켜짐과 동시에 경찰차가 왔다.
경찰차가 오는 것을 빨간 패딩의 남자가 횟집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이 내렸다. 바로 빨간 패딩의 남자가 달려왔다. 운전대를 잡은 안경을 낀 경찰이 빨간 패딩의 남자를 막고, 나와는 조수석에 앉았으며 통화를 한 경찰이 대화를 나눴다. 그때까지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저쪽 길에서 쭉 오는 길에 두 분이 싸우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 남자가 여자한테 공격적으로 다가가서 손을 뻗어서 이렇게, 아주머니를 안는 것처럼 사이를 막았어요. 계속 막으려 하다가 아저씨가 쫓아와서 잡고, 그러다가 모자가 뜯겼어요. 패딩 후드 모자예요. 원래 단추가 있어서 뜯어질 수는 있어요. 그래도 일단 피하게 해드려야 될 것 같아서 가고 있는데 아저씨가 계속 쫓아와서 잡고, 당겼어요. 저요? 네. 저도 잡았어요. 맞은데요? 뺨을 한 번 맞았어요. 툭 치듯이요. 아무튼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경찰한테 전화했어요."
그때 안경 낀 경찰이 말했다. 무서웠죠. 아이고, 애기네 애기... 그때 갑자기 눈물이 펑 터졌다.
처벌을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한참을 횟집 문을 바라봤다. 참 기구했다. 오늘 약속이 있었다. 친한 동생들에게 먼저 내가 회를 먹자고 했었다. 지금 낭만 사시미에서 7시 30분쯤에 도착할 거래요! 라고 하트하트를 연신날 리는 카톡을 받았는데. 저 횟집 문은 어찌 저리도 차가워 보이는지. 패딩 남자가 갑자기 나를 끌고 횟집으로 가는 순간 내가 회칼에 피부가 잘잘 이 썰릴 것만 같은 공포에 그 문이, 그 문이 너무도 무서웠다.
한참을 횟집의 문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냥, 아주머니 안전하게 해 주세요...! "
자신을 탓했다. 니 소유가 아니야, 라는 말은 너무도 이성적인 말이었다. 단박에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아주머니 안전하게 해 달라는 말도, 아주머니 지켜주세요. 분리해주세요. 집에 가셔서 맞지 않게 해 주세요. 저 아저씨가 또 쫓아와서 목덜미를 잡도록 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중년 여성의 그분을, 내가 어머니, 무서우시죠.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부르던 그분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분이 미안하다고 할 때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 말보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어머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안경 낀 경찰 분이 손수건을 건네주셨다. 가져가지는 말고, 라며 이마를 쓰다듬으셨다. 그가 믿음직스러움과 동시에 뒤에 이어지는 그의 말에 불안해졌다. '알고 보면 둘이 지인 사이라, 여자가 뭘 성질나게 해서, 또 술도 취했고 그래서....'
불안했다. 저러고 그냥 둘을 보낼까 봐. 아니나 다를까 여자분에게 댁에 데려다 드린다고 말하니 아니라고 했단다. 그 상황에 집에 가면 또 만날 테니 당연했다. 피해 사실을 경찰에게 말하고, 남자가 화가 난 채로 집으로 가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더 큰일이 날 텐데. 내가 사이를 끼어들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서, 맞서지 않아서, 정확히 말하지 않아서,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랬다, 폭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아서. 더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봐. 나는 경찰 두 분에게 말했다. 꼭, 후에 어떻게 됐는지 연락해주세요.
나오지 않는 펜으로 내 이름을 쓰는 것도, 그대로 그냥 넘어가려는 것도, 내가 말하는 상황을 꼼꼼히 적지 않는 키 큰 경찰관 두 명에게 위로받으면서도 불안해지는 저녁, 6시 30분이었다. 나는 이 모든 말을 적기 위해 폰 배터리를 아껴야 했다. 비행기 모드로 돌리고 배터리 4프로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30분 내내 메모를 적었고, 집에서 도착하자마자 가방도 윗옷도 벗지 않고 충전기를 연결해 계속 메모를 했다.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비행기 모드를 풀자 동생들이 어디냐고 보낸 카톡이 몰려 왔다.
나는 오른쪽 어깨를 자주 잡혔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른쪽 어깨와 등 부분이 아렸다. 빨간 패딩의 남자가 나를 잡고 놓치기를 반복하며 찌르고, 쥐고, 긁었기 때문일 것이다. 메모를 적고 난 다음 경찰에 전화했다. 어떻게 되었냐고. 영상도 찍었고, 그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메모해두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가겠다고.
둘을 횟집에 두고 왔단다. 이후 다시 전화를 해서 어떤지 확인해보는 것 같은 조치도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망연자실하였다. 사람들이 다 보는 사거리 골목에서도 그러는데 집에선 오죽할까. 둘이 아는 사이라고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인가. 그것이 법인가. 폐가 쪼그라들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경찰이 나를 달래는 듯 말했다. 아까 그분이요.. 경찰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다시 반문했다.
"네?"
"아까 그분이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
"고맙다고."
그때부터 어버버 거리 고는 전화를 끊었다. 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던 것만 기억난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가슴께가 꽉 조이고 아팠다. 한숨과 울음으로 오장육부가 폐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그분의 손을 놓친 것이 아닌가. 이대로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딱, 우울의 미끄럼틀을 타고 추락할 것 같았다. 이대로는 내가 나를 해칠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자신을 자책하면서. 가정 폭력이라고 검색해서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1366이었다.
*
이 글은 빨간 패딩을 입은 모든 사람을 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으며, 빨간 패딩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멀리서 걸어오면 몸이 굳는다. 왜 가시적인 색깔보다 행동적,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코로나가 끝나면 자주 멈출까? 그것도 모르겠다. 다만 조금 덜 멈추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