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다. 최근에 아이의 학교 행사도 많았고, 런던 근교 여행도 다녀오고, 날씨가 좋다 보니 계속 돌아다니라 밤마다 꿈나라 직행하는 상황이 계속 됐다. 게다가 1년 살기를 연장하다 보니 경제활동을 해야 되다 보니 새벽에는 HTS나 MTS를 켜놓고 데일리 혹은 위클리 트레이딩을 하다 보니 피곤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어찌 보면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바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족을 위한 상황이라서 그런지 행복하다.
런던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 일화로 버스나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한국에서 대략 40년 이상을 지내왔기 때문에, 런던의 모든 것을 한국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아저씨인 점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어느 날 C11 버스를 타고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는데, 갑자기 England Lane으로 가지 않고 Camden 쪽으로 직진을 한다. 그 시간에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적지 않게 많은 부모들이 황당해했지만, 버스기사는 공사 중이라 Divert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그냥 돌아간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됐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15분 가까이를 돌아가야 됐고, 정류장이 아니면 정차하지도 않았기에 승객들은 화가 많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부글부글이지 다른 승객들은 평온했다. 그러니깐 흔한 일쯤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다만 몇몇 분들은 기사에게 우리가 가는 목적지까지 가는 것 맞지 정도만 물어보고 자리로 돌아온다.
우리나라라면 버스에 종이라도 붙이든가, 탈 때마다 버스기사님이 이야기를 하겠지만, 여기는 알려라도 주면 다행인 분위기이다. 정말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여기서 다 내려야 되요부터 정차하지 않고 지나가는 등 황당한 일이 종종 있지만, 의외로 크게 불평하지 않는 모습에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런 일화를 영국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Welcome to London"이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이해하긴 어렵지만, 친구이야기로는 흔한 일이고, 사정이 있으니깐 그러겠지라며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체국에서 줄이 엄청 길게 서 있는데 창구 앞에서 한 명이 30분 가까이 시간을 쓰고 있어도 아무 말이 없다. 그냥 지쳐서 다음에 오지라는 식으로 돌아갈지라도. 뿐만 아니라 커피전문점에서도 줄이 엄청 길어도 한 명이 10분 이상 주문하고 있지만 그냥 묵묵히 기다린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과연 얼마나 이 상황을 버텨낼까? 우리는 눈으로 이미 압박하고 있을 테고, 그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면 말을 꺼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임).
처음에는 이런 상황들에 적잖게 짜증 나고 답답했지만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이 되니, 이제는 적응해 버린 것 같다. 뭐 이유가 있겠지, 주문을 잘 못하나 보네, 아 문의사항이 많나 보구나 등으로 넘기며, 나는 그 시간 동안 멍 때리거나 주변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뭐랄까? 이상한 인내심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버스뿐만 아니라 지하철은 타고 가다가 갑자기 종점이나 방향이 바뀌는데 방송 놓치면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귀신같이 알고 내리는 런던 거주자들이다. 아니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도 어떻게들 그렇게 잘 듣는지 참으로 놀랍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갑자기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눈치껏 전광판을 보거나 옆에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니깐 이상한 인내심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사실 영어를 잘못하기 때문에 더욱더 이런 불편함이나 불합리함(?)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일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조롱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여하튼 런던에서 산다는 것은 의도하든 안 하든 이상한 인내심을 기르는 좋은 장소(?)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지낼 때보다 불편하고 불합리함을 많이 겪지만 이상하게 "화"는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