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꽃손 나덕운대표 마지막 인터뷰
디자인마케팅연구소를 "디마"로 나덕운대표님을 "나"로 줄여 표기 합니다.
디마 : 음…여기 참 분위기가 좋네요.
인터뷰장소로 뭐랄까.. 카페 몬텐킨트 이 곳이 무언가 대표님께 특별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나: THE GOONI Café+ 몬텐킨트와의 인연은 2014년이었어요.
덕운은 지금 살고있는 곳이 태어난 고향이예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문화촌.
그 곳의 덕운이 나온 홍은초등학교 사이 골목은 지금 조그만 공방들촌이예요.
덕운은 그곳의 이름을 ‘윤동주 n 김광석 골목’이라고 불러요.
이유는 광석이형 절친이 근처에서 화실을 하고 있고, 이 골목에 광석이형 음악과 동주시인의 시가 있는 공방비슷한 곳이 있었어요. 그공방 바로 앞이 조그만 카페인 몬텐킨트였죠.
아주 조그만 카페 초등학교 책상 3개가있고, 칠판이 있고, 책들이 많고, LP음악을 들을수 있는 곳.. 터키 커피와 주스 등을 단돈 2천원에 파는 곳.
덕운은 2014년부터 이곳의단골 손님. 그러다 2014년 말 코스맥스 그룹의 비계열특수법인 ㈜자연이 만든 화장품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고 덕운이 화장품 업계를 떠나야겠다고 맘을 먹었어요. 그리고 30개월간의 방황. 성당선배와의 통신일, 처남과의 건축일. 그 기간 아버지의 화재사고로 인한 사망. 덕운에게는 여러 악재들이 연속해서 일어났죠.
그 기간 덕운의 유일한 아지트이자 보금자리가 ‘몬덴킨트’ 카페였어요. 덕운과띠동갑이 80년생 법학을 전공한 우상이라는 사장과 연극영학과를 전공한 경혜라는 여친이 운영하는 곳.
덕운은 거의 매일 이곳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 당시 이곳을 찾아온 덕운의 지인들은 지금은 거의 대분분 절친.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친구, 아모레퍼시픽 친구, 또 많은 페친들.
아마도 40살이 넘어서가장 힘든 시기에 덕운에게 ‘편한 쉼터’가 되준 이곳.
덕운이 이 카페 커플에게 두가지를 약속했어요.
첫번째, 몬텐킨트라는 분별력없는카페명대신 새로운 네이밍을 선물
두번째, 덕운이 돈 많이벌면 이 커플들 결혼식 선물
덕운이 THE GOONI라는화장품 회사를 창업하고, 그 창업식을 한 2017년 10월19일 덕운은 이곳 카페에 ‘THEGOONI Café+ 1호점’이라는 현판을 달아주었어요.
그리고 꽃손덕운, THE GOONI와 함께 자연스럽게 홍보하였구요.
이제 남은 것은 덕운이가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로 성공하면 이 커플사장에게 결혼식을 선물하는 것. 아마 가능할 듯. 시간이어느정도 걸리겠지만요..^^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 사저 근체에 있는 THE GOONI Café+ 몬텐킨트의 칠판에는 올 7월 덕운의 30개월만의 컴백후 이 곳 카페에서 함께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음. 이곳을방문한 덕운 지인들은 100% 덕운에게 넘 소중한 사람들. 여러분들도이 곳 칠판에 여러분의 이름을 적고 싶지않은가요?
앞으로 THE GOONI Café+몬텐킨트는 THE GOONI 화장품의 첫번째 신규 브랜드가 런칭하면 덕운의 ‘Beauty Platform’ 역할을 할거예요. 이 곳에서 많은 인터뷰도진행할 것이도, 모바일 또는 기타 방송도 진행할 것이고, 고객들뷰티/요리 특강도 진행할 것이고, 신제품 테스팅 또는 뷰티관련공방으로도 활용될 거예요.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디마: 아까 힘든 시기를 살짝 언급하셨어요...저도 그렇지만 힘든 시기는 누구에게나 오지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가가 상처가 힘이 되어 성공의 길로 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아직도 극복하고 계시겠지만....이겨낸 원동력은 혹은 계기가 있다면 듣고 싶네요.
나 : 살면서 누구나 고난의 시간은 많죠.
덕운 역시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특히 1993.11월 아모레퍼시픽입사후 25년간의 화장품업계 생활동안 세번의 고난이 찾아왔죠.
16년간 다닌 아모레퍼시픽을 2010.1월 42살의 나이에 명예퇴직.
다행히 2010.3월 한경희뷰티의 총괄 본부장으로 스카우트 되기전에 잠시 새로운 일.
‘아리얼’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했던 뷰티팩토리의 초창기 화장품 사업 세팅에일부 관여를 하고 배우 박시연의 패션 브랜드 ‘TOUCH’의 네이밍을 해줄 수 있었던 짧지만 좋은 경험들.
그리고 한경희 뷰티의 총괄본부장으로2010.3~2011.6월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성공한 여성 CEO였던한경희 대표. 그러나 스팀 청소기, 다리미를 만드는 회사에서화장품 조직의 수장으로 일하는 것은 쉽지않았어요. 특히 처음 10여명의직원들을 덕운 손으로 30며명까지 확대하고 모회사의 심한 간섭과 이해부족속에 덕운은 처음 50억의 매출을 300억까지 끌어올렸죠. 그 때 함께 한 직원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그러나 참사람 맘먹은 대로 되는 것이 없었죠. 오너 기업의 문제점 아시죠? 길게얘기안해도 추측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덕운은 가장 존경하는 여성 CEO에 주저함없이 한경희 대표를 말합니다.
그 분과 함께한 16개월간덕운은 ‘열정’을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또한 마케팅만 했던 덕운이 ‘재무, 회계, 영업, 생산, 유통, 물류, 해외영업등’ 화장품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었던 정말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결국 덕운은 오너가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첫번째 고난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 배신감 등 참 어려운 시기가 지속되었죠. 이 때 저를 잡아준 것이 바로 ‘성당’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나약한 저를 일으켜주고 잡아주고 다시 시작하게해준 것이 ‘성당과 기도의 힘’이었죠.
그리고 저는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의 마케팅 이사로 새로 시작하게되죠?
이 회사 아시죠. 음. 어찌보면 지금의 현실과 연결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의 시발점이된 정훈호 회장님의 회사. 여러분 정운호 회장 아시죠. 화장품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웠던 2003년 39살의 나이에 더페이스샵을창업해서 로드샵 1등 브랜드까지 육성한 덕운은 네이처리퍼블릭에서 13개월간일하면서 마케팅이사로 ‘마케팅 전략, 영업과의 Bridge 역할인 TM(Trade Marketing), 온라인쇼핑몰, SNS 업무, 해외업무 서포트’를하면서 한경희 뷰티 총괄본부장때 배웠던 업무에 추가적으로 ‘온라인과SNS’에 대한 많은 업무를 배우고 실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네이처리퍼블릭은 더페이스샵 출신들이 주축이 된 영업중심의 회사. 결국 덕운을 포함해아모레퍼시픽 출신 3인방은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덕운은 또한 회사를 떠나기전 업무와 조직과의 갈등으로 1개월가량몸상태가 최악이 되어 병가를 내게 됩니다. 그 때 얻게된 고혈압으로 아직도 약을 먹고있어요.
두번째 시련의 시기가 찾아온거죠. 몸이 너무 안좋아오랜기간 병원을 다니며 고생을 너무 했어요. 그래도 덕운은 회사를 떠나도 오너와의 관계는 참 좋았어요. 퇴사후에도 정운호 회장님을 개인적으로 자주 찾아뵈었죠.
그리고 얼마후인 2013년 11월 마지막 화장품 샐러리맨의 장소인 레시피 화장품(자연이 만든레시피)의 대표이사로 취임을 하게되죠. 이 회사의 전신은 SK그룹의 자회사였으며 코스맥스 그룹의 비계열 특수법인이었죠. 직원수 15명에 년매출 70억정도의 홈쇼핑이 중심인 회사였죠. 매출 규모는 크지는 않았지만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투명선스프레이’를 가지고 있었죠.
덕운은 강한 핵심능력중 하나가 ‘강한 인맥’이죠. 그래서 덕운은 이 제품을 국내외에 띠우기위해 덕운 개인 SNS를 통해 초등학교~중학교 친구들 핵심멤버 50며명을 회사근처를 자주 불러들여 홍보대사(?)로 활용하고, BIG MOUTH들이 많은 경복고 62회 친구들(삼성 이재용 부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덕운 동기동창)을 적극활용 브랜드 티셔츠로 입히고 별의별 홍보를 다하죠.
그리고 SNS에서 친한 골프선수들과 연예인들에게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제품 공급을 합니다.
또한 조그만 회사에서 힘들었지만 덕운 스스로 홍보팀장이 되어5개의 언론사를 어렵게 섭외해 인터뷰 기사를 정말 어렵게 노출하게 되죠.
그리고 덕운의 초등학교 사돈이었던 연예인, 덕운은초등학교 친구의 동생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 2명을 거의 무료수준으로 계약을 해서 작은 회사 이지만여기저기 돈 안들이고 광고홍보를 진행했었죠.
또 일본, 중국,태국, 제주도등을 20여차례 뛰어다니면 미친듯이미팅하고 홍보했던 것같아요.
덕운이 아마 25년 직장생활중 가장 ‘미친듯이 일한’ 기간이2013.11~2014.12월일 것입니다.
이때 매일 새벽 4시30분에 택시를 타고 출근했어요. 무려 6개월을. 직원들 출근전 4시간먼저 일하고 오후에는 여기저기 뛰어다녔죠.
그러나 덕운은 2014년말 세월호이후 매출부진에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납니다.
너무 큰 아쉬움이었죠. 그리고생을 해서 뛰어다니고, 지금은 투명 선스프레이의 성공신화의 초석을 마련했는데. 하지만 떠날 시간이 되면 떠날 수밖에 없죠.
이 기간 동안도 같은 카톨릭 신자였던 코스맥스 그룹의 이경수 회장님에게정말 많은 가르침을 받았죠.
그러나 2014년 12월 회사를 떠난후덕운은 30개월동안 화장품 업계를 떠납니다. 물론 계속 화장품관련 강의는 했었죠.
21년간의 화장품 업계 생활중 만났던 4명의 오너.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님은 덕운에게 ‘화장품에 대한 기본과 이니스프리’를 선물.
한경희뷰티의 한경희 대표님은 덕운에게 ‘화장품 마케팅이외에 다양한 업무와 열정’을 선물.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대표님은 덕운에게 ‘화장품에 대한 끼앤깜과 SNS 능력발휘’를 선물
코스맥스그룹의 이경수 회장님은 덕운에게 ‘대표이사의 경험과 전문성’을 선물
21년 기간중 세번의 고난과 시련. 지금 생각해보면 삶에 있어서 좋은 경험이라고생각되죠.
그런데 그 힘든 기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덕운의 주저함없이 ‘성당과 기도’의 힘이 가장 컸다고 말랄 수 있어요. 조건없이 늘 항상 편하게 덕운을 받아 준 성당과 포기하지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준 기도의 힘이죠.
디마: 아...사이사이 울컥했어요. 마음 좀 진정하구요...올해로 나이가 딱 지천명인 50이 되셨네요. 인생은 60부터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라면 아직 어리신데요. 지금 본인의 브랜드를 만드시고 많은 일을 하시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나 : 덕운이 20년 넘게 화장품마케팅을 하면서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고 마케팅을 했죠.
그러나 항상 갈구했던 ‘나만의브랜드’ 즉 더구니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했죠.
그리고 어찌보면 2015.1월부터근 3년간 기획한 브랜드를 세팅은 끝내놨습니다.
회사 이름도 덕운의 이름을 딴 ‘THEGOONI’로 만들었고. 네이밍도 해놨고, 컨셉도잡아놨고, 50여품목 기획도 끝내놨고, 그리고 무엇보다 함꼐일한 10여개 협력업체 세팅을 끝냈습니다. 그 중 4개업체가 덕운과 1998년부터 이니스프리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온업체입니다.
지금 국내외 업체 3~4군데와투자금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PLAN A가 11월 투자금 확정후 곧바로 브랜드 개발후 내년 5월 런칭계획이었는데.
지금은 PLAN B를 계획중입니다. 1월 투자금 확정후 내년 하반기 런칭이 될듯합니다.
그런데 일부 품목 ‘미스트’와 ‘마스크’는 잘하면내년 상반기에 여러분들에 선을 보일수 있을 것입니다.
미스트는 전세계 어떤 제품과 비교해도 자신있는 미스트를 만들수 있고. 마스크역시 정말 깜짝놀랄 마스크를 만들수 있습니다.
우선 미스트가 언제 나올까 기대 많이 해주세요.
디마 : 마지막으로 제 옆지기가 서울경복고등학교 출신인데 선배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나덕운에게 경복이란?"
나: 덕운에게 경복고란 ‘너무도고마운 힘’입니다.
평범한 초등학교인 홍은 초등학교, 평범안중학교인 인창 중학교 출신인 덕운이 뺑뻉이로 가긴했지만 전국 3대 명문고중 하나인 경복고 출신이라는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솔직히 공부는 경기고, 서울고에밀릴지 모르지만 경복고는 정말 ‘인맥 깡패학교’같아요.
정치, 경제, 연예, 스포츠 등 어디 한군데 경복고 출신들이 없는 곳이 없는 듯해요.
솔직히 덕운이 지금도 가장 도움을 많이 받는 친구들이 경복고 동기들이고밴드나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교류를 하는 선후배들 친구들이 경복고 동창들입니다.
앞으로도 경복고는 덕운에게 영원히 현존하는 최고의 고등학교로 자리잡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