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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01. 2020

2019년의 기록 그리고...

<1월 2일>

결정은 힘들죠. 늘. 이제 더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오늘 저희는 호스피스를 결정했어요. 눈물이 자꾸 나려고 해서 돌아서서 울었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그러나 힘내서 가봐야지요. 씩씩하고 평화롭게. 평화를 빌어주세요


<1월 10일>

지난 며칠 동안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저 아둥바둥 했는데 내가 마치 뭔가 잘해낸 듯이 공허한 말들을 쏟아내며 어떤 노력들을 하고, 내 노력이 그의 삶에 어떤 공로라도 있는 것처럼 지내온 것 같은 패배감과 허무함, 모든 것은 그저 연명치료였을 뿐이라는 생각,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 지금 남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고립된 것 같은 마음에 시달렸다.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차립시다.


<1월 14일>

호스피스 선생님을 만나기로 한 건 17일인데 통증 관리가 잘 안되기 시작하더니 어제 저녁에는 빨리 병원에 가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다. 호스피스로 당장 입원이 가능할 지 어떨 지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지금 보다 더 나빠지기 전에 함께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들이도 아닌데 아이들이랑 함께 올라가고 있기는 하다. 가는 길에 오늘 컨디션이 괜찮아져서 병원 대신 카페에서 애들이랑 차 한잔 같이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1월 21일>

집에 왔어요. 호스피스에서 이런 저런 약 처방을 받은 뒤 통증관리도 잘되고 있고요. 그렇다고 제가 나가서 활동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이 웃으면서 농사도 지을 수 있겠어하고 농담도 할만큼 편안합니다. 다 내려놓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나봐 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고개를 끄덕끄덕. 날마다 딱 오늘 같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자문형 호스피스를 선택했어요, 되도록 집에서 지낼 계획입니다)


<1월 31일>

남편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잘웃고, 아이들과 장난도 치면서 평온하게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어요. 도시에서 일할 때에도, 농사를 지었을 때에도, 아플 때에도 멋진 사람입니다. 특히 요즘은 가까이에 있는 행복과 아주 친하게 지낸답니다. 밤새 눈이 이렇게 내렸나 깜짝 놀랐어요. 눈 내리는 오늘도 컨디션 나빠지지 말고 평온하고 무탈하게 잘 부탁드립니다. 고마운 남편 사랑해용. 고마운 날들입니다!


<2월 5일>

숨쉴 때마다 옆구리 통증을 호소해 구급차 불러서 J대병원 응급실. 전원 의사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통증조절을 위해 며칠 입원할 수 있는 지 여쭈어보니 우리가 이 병원을 이용한 적이 없어서 입원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남편은 아픈데 설연휴로 교통은 꽉 막히고 표도 없고 일산으로 갈 방법은 없고 ...


<2월 9일>

망설이다가 해두어야할 것 같아서 호스피스 병동 입원 대기 신청을 했다. 나는 마무리 했어야 할 일들을 하고, 밥을 하고 밥을 먹고, 뉴스를 보고, 아이들이 가지고 온 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고, 잠을 잤다. 아무렇지도 않은게 않은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2월 12일>

1998년 1월 8일이었을꺼예요. 회의 장소를 찾다가 복도에서 누군가를 스쳤죠. 빛이 쫘악. 이런 기분이 있을 수 있구나 했어요. 잠시 뒤에 회의 장소에 갔는데 그분이 앉아있었어요. 신기하게도 말이예요. 그때는 우리가 결혼할 줄 몰랐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을 기억해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처음 본 그날처럼 늘 빛나는, 사랑하는 남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2월 13일>

병원에서 결핵균은 나오지 않았지만 조직배양은 계속 할거예요 하시더니 남편 조직이 배양되면서 결핵균이 나왔다고 연락. 좋다가 말았어요. ㅠㅠ 

가족 전염이 제일 높다고 하니 온가족이 검사도 하고 누군가는 약도 먹어야겠죠. 남편이 쌍둥이들 졸업식 보고 싶어했는데 이래저래 못보고 병원으로 휘리릭 가야죠


<2월 17일>

결핵약이 엄청 독해요. 부작용 교육을 받아서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겪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남편이 어쩔 줄 몰라하고 계속 구역.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어요. 응급실에 전화해서 몇가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약 드신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절대 응급실 오시면 안됩니다. 네네네 아직은 전염력 만랩이군요 가려고 전화했던 것은 아니예요ㅠㅠ 호흡기 내과 선생님은 폐암환자가 결핵에 잘 걸린다고 안타까워 하시고 결핵 전문 간호사 선생님은 남편이 호스피스 환자라서 안타까워하시고... 이제 저하고 아이들 잠복 결핵 감염 여부 검사하러 다녀야해요. 검사 가능 병원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도 정말 일이더라고요. 아이들은 별 문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워요 비워요 싹 비워요. 어려운 시간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예요 네네넹


<2월 20일>

남편은 J대병원 응급실에서 몰핀 네병을 연속해서 맞고서야 이제 겨우 잠이 들었다. 응급실 격리실에 있는데 우리가 병원을 옮기려고 예약한 외래를 받기 전에 응급실에 온거여서 병실로 들여보내주실 지는 모르겠다. 응급실의사선생님은 최대한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신다. 고생스럽지만 일단 입원될 때까지 버텨보자고 하신다. 나는 오늘 애들이랑 병원에 왔다가 또 남편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와서 도통 정신없고 마음 아픈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2월 21일>

다행 다행 J대병원 입원. 일단 한시름 놓아요.


<2월 22일>

진통제를 먹고 붙이고 한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아도 통증이 잡히지 않아 하루종일 고생한 남편. 의사선생님도 놀래킨 극심한 통증. 결핵약이 통증을 더욱 심하게 해 결핵약은 중단될 예정이다. 격리되어야 하므로 1인실. 앞으로도 1인실. 나와 의료진을 제외하고 우리 병실은 출입 금지. 지금 내 소원은 남편이 단 30분만이라도 통증없이 잠잘 수 있으면 좋겠다임. 아주 긴 하루가 그래도 저물어간다...통증이 잡혔으면!


<2월 27일>

남편이 J대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에 결핵약을 중단했다가 용량을 줄여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고 열이 계속 잡히지 않았고 진통제 사용량이 집에 있을 때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다니던 환자가 아니어서 충분히 난감했던 의료진들은 친절하고 최선을 다해주신다. 참 감사한 일이다. 바라고 바라는 일이지만 앞으로 퇴원할 수 있을 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우선은 결핵의 전염성이 떨어져 격리가 해제되어 다인실로 병실을 옮기거나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고 진통제 용량을 최대한 맞춰서 통증을 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섬망이 있던 터라 남편은 밤에는 통증과 더불어 잠을 못잤고 낮에는 비몽사몽했다. 그래도 오늘 저녁에는 면도를 했다. 남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동안 계속 음식을 못먹었었는데 어제는 국 몇모금, 오늘은 밥 몇숟가락을 먹었다. 차츰차츰 한수저 한수저씩 식사량이 늘어나면 좋겠다. 나는 그저 옆에 있는 것 외에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보다 더한 최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그래도 오늘은 감사한 날이다.


<2월 28일>

격리 해제! 어제 객담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다인실 나오면 옮겨 주신다고 하셨어요. 물론 당연히 다인실에 가서도 커튼을 치고 마스크를 끼고요. 계속 1인실  하루 34만원.  눈덩이같이 병원비도 제 걱정도 늘어나고 있었는데 다행이예요. 오늘도 감사한 하루! 


<3월 1일>

지금 다인실로 옮김. 여기서 며칠 지난 뒤에 결핵약 복용 날수가 더 많아지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지만 기적처럼 퇴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조용한 방에서 남편 앓는 소리만 듣다가 다인실로 오니 왁자지껄하다. 소리에 묻혀 남편 앓는 소리가 안들리니 이 방 환자 중에 남편이 제일 안아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 날이 왔으면!


<3월 6일>

호스피스 병실. 병실 이름은 달.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남편의 평안을, 우리 가족의 평화를 구해봅니다.


<3월 21일>

이제 남편은 정신이 명료한 순간이 하루에 단 몇분 밖에 없다. 그나마도 할 수 있으면 다행. 잠깐이라도 내가 안보이면 나를 무척 찾았는데 이제는 내가 옆에 있는 지 모르기도 한다. 지지난주와 다르고 지난주와 다르고 또 어제와 다르다. 본능적으로 아프다는 말 외에 끙끙거리고 섬망을 하고 소리를 갑자기 지르는 것 외에 하는 말도 없다. 진통제 용량을 계속 늘이고 있어도 통증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 병동에서는 보통 2주 정도면 통증에 맞게 진통제 용량이 맞춰진다는데 남편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신다. 누워자면 힘들고 계속 앉아있으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이불, 쿠션, 베개를 다 동원해 얼기설기 각을 잡아 남편이 제일 아프지 않고 침대에 있을 각도를 잡았다. 오늘 회진이 끝난뒤 주치의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나를 복도로 불렀다. 내가 예상하던 이야기들.

화요일마다 보호자들이 모여 호스피스와 관련된 교육도 받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어느 보호자가 이런말을 했다. 남편에게 서른개의 인격체가 있는 것 같다고. 친절하고, 화를 내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미안해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노라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에게도 여러 인격체가 있었다. 아파하고, 화를 내고,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그 모든 인격체들이 사라지고 있다. 폐암카페 회원 누군가가 그랬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된다고. 힘들어 하지 말라고. 나는 안다. 내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굳건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울지 않고 싶다.


<3월 24일>

최근 들어 오늘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남편. 신기한 날입니다. 대세를 받았습니다. 세례명은 요셉입니다.


<3월 28일>

새벽에 너무 어지럽다고 잠깐 쇼크. 눈이 뒤집힌다 싶긴 했는데 간호사선생님들이 신속하게

산소와 혈압 다 체크해주시고 혹시 덱사 때문에 혈당 문제가 있는 지 확인해주셨는데 별 일 없이 잘 넘어갔어요. 그런데 온 몸에서 식은 땀이 쉬지 않고 나고 두시간 정도 뒤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더니 갑자기 바지에 대변을 보았어요. 사실 그동안 밥을 전혀 못먹고 먹는거라곤 물한모금, 사이다 한모금, 커피우유 한모금 정도였고, 일주일정도 보지 못한 변을 최근 이삼일 동안 보아서 나올 게 없을 것 같았는데 배에 있는게 다 나온 거 같았어요. 그리고 머리가 아프다 눈이 아프다 늘 아픈 배와 옆구리, 가슴이 아프다 하더니 진통제 맞을까 물어보았는데 안맞고 싶다고 하더니 눈도 다 뒤집히고 초점도 안맞고, 뇌전이 때문이구나 가슴이 철렁.

너무 아파 너무 아파 하면서 제 뺨도 한번 어루만지고 자기가 들어서 나를 침대에 놓아줘 하더니 잠들었어요

깨어나서도 눈에 초점은 아예 안맞고 가래가 없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래소리가 그렁그렁. 병실분들이 소리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실만큼 순식간에 가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석션도 하고 뇌압 낮추는 주사도 들어갑니다. 어제와 오늘. 단 하루인데 천지차이.
이미 머리로 알고 있고, 지난 5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보았던 병원에서 마주했던 장면들이 있지요... 무엇을 간구해야할 지 모르겠고 이대로 더 목소리 못듣게 되는 건 아닌 지 두려운. 그런 날. 어른들께 전화를 드려 뭔가 알리고 마음 단단히 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은 날. 그런 날입니다. 슬퍼요 몹시.


<3월 29일>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2019년 1월 호스피스를 결정하고 남편이 하늘의 별이 될 때까지 생각해보니 3개월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이 흔히 항암을 하지 않으면 여명은 3개월입니다라고 말하는 그 3개월이었네요.

요며칠은 마냥 누워만 있고 싶었습니다. 다 귀찮고, 다 쓸데 없고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거든요.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오늘은 삼개월만에 집에 돌아온 제가 앓아누운 날이기도 했습니다. 호스피스에 있었으면서도 혼자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돌아왔을 때, 꽃피는 이 찬란한 봄에 혼자 집으로 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토록 집에 와보고 싶어했는데 남편이 집에 와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아프고 아팠습니다. 지난해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건 아직 세월이 덜 흘렀기 때문일까요


남편은 휴대폰에 여러음악을 다운 받아서 들었어요. 그 중에 정은지의 하늘바라기 라는 노래도 있었어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아니어서 "자기, 정은지 노래 좋아해?"라고 물었는데 

"왜 노래가 좋잖아"하고 남편이 말했어요. 그냥 남편이 아이돌 노래를 좋아하는게 의외라고만 생각했었어요.

며칠 전에 어쩌다가 하늘바라기 노래를 들었어요. 집중해서 들은 건 처음이었는데 이제서야 남편이 왜 그 노래를 좋아했는 지 알 것 같아 눈물이 났어요. 

"아빠야 약해지지마 빗속을 걸어도 난 감사하니까"

그는 아빠니까 강해지고 강해지고 싶었나봅니다. 

아이들의 하늘로 있어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는 걸 저는 남편이 곁에 없을 때 이제서야 그 마음을 헤아려보게 됩니다.

하늘로 가기 일주일 전쯤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 말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 엄마 말을 잘 들어야해"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병문안을 온 친척 어른께 "우리 마누라를 좀 편안하게 살게 해줘야 하는데 하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말 정신없이 아플 때, 자꾸 나에게 존댓말을 할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도 정신이 들면 저를 위한 말들을 해주었네요.

모르고 지나간 일들이 왜 이리 많을까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생각보다 너무 일찍 이별을 한 부부가 되었네요. 

첫 기일을 맞이해보는 저는 그냥 슬프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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