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삶의 뒤안길에서
#1
늦은 나이에 인왕산에 오르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넓은 바위 위에 누워봅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다닙니다. 눈앞에는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습니다.
저 멀리 목을 쭉 뻗은 모습에서 황새임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아마 예산군에서 방사한 개체로 보입니다.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남산 위 창공을 날다 여의도 고층 건물 위로 활공을 이어갔습니다.
안산을 끼고 북쪽을 향해 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한양도성의 하늘에 황새가 자주 날아다녔습니다.
아마 1892년 제물포 영국 영사관에 근무했던 캠펠(Campell)은 한양과 경기지역에 황새가 많이 살았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때는 인왕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이런 빌딩도 없었습니다.
초가집들과 논과 밭이 전부였을 테니까요.
#2
인왕산 길을 오릅니다.
땅바닥을 쳐다보면서 걷습니다.
내 앞에 걷던 사람의 발에 밟혀 개미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개미들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개미도 거들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딱 한 마리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일개미는 이름하여 장의사 개미입니다.
개미들 사회에는 장의사 개미 말고 쓰레기를 치우는 개미도 있습니다.
이들은 평생 허드레한 일을 도맡아 합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개미에게는 쓰레기 냄새가 납니다.
다른 개미들은 그 냄새를 맡으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쓰레기 처리 개미가 몰래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쓰레기 냄새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다른 개미가 쓰레기 냄새를 맡자마자 쓰레기 더미 쪽으로 떠밀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장의사 개미는 죽은 시체에서 나오는 올레산 냄새에 특별히 민감합니다.
사람처럼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생사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순전히 냄새를 맡아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산 개미의 몸에 올레산을 묻히면 살아 움직이는 그 개미도 곧바로 공동묘지로 끌려갑니다.
#3
인간이 이 땅에 산 것이 불과 300만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미는 1억 4천만 년이 넘습니다.
개미는 그냥 허투루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보다 1억 년 이상을 살아왔기에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명,
즉 경험을 축적하여 개미들만의 문명을 건설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서 개미의 종을 1만 4천 종을 찾아냈습니다.
과학자들은 아마 이것보다 몇 배 더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극과 북극을 제외한 지구를 점령해 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간보다 훨씬 일찍, 각 군체들은 지구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면서 문명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애벌레를 사용하여 얇은 천을 만들 줄 알았고,
일개미들을 활용해서 먹이를 공급할 줄 알며, 일개미들을 살아있는 냉장고로 변형시킬 줄 알았습니다.
또 진딧물을 사육하여 분비물을 짜낼 줄 알고, 술과 곡물 가루와 버섯을 재배할 줄도 알고 있습니다.
노예사냥 개미는 다른 개미집의 알이나 번데기를 포획합니다.
자기 집으로 가져와 부화된 개미들을 노예로 부려먹습니다.
일종의 개미의 노예제입니다.
#3
가위개미는 땅속에다 농장을 만들어 균류를 기릅니다.
심지어 나뭇잎을 짓이겨 퇴비도 만들어 줍니다.
사실 이 균류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자라지 않은 종입니다.
이 가위개미가 꾸준히 돌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종입니다.
하지만 어른 개미는 그 균류를 거의 먹지 않고 오로지 새끼들을 양육하는데만 씁니다.
어른 개미는 주로 식물 진액을 먹고삽니다.
일종의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인간의 모성애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축 개미는 진딧물을 열심히 기릅니다.
진딧물은 서양배 모양으로 생긴 아주 작은 곤충으로, 식물 즙을 먹고 삽니다.
목축 개미는 진딧물이 식물 즙을 충분히 먹도록 여기저기 옮겨 주고,
비가 오면 젖지 않게 피할 곳도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진딧물을 잡아먹는 무당벌레 같은 포식자를 물리치기도 합니다.
때론 진딧물 날개를 물어뜯어 도망치지 못하게도 합니다.
목축 개미는 진딧물이 식물 즙을 먹고 만들어 내는 단물을 즐겨 먹습니다.
마치 소젖을 짜듯 더듬이로 진딧물의 몸을 간지럽혀 단물이 나오게 합니다.
그곳은 바로 진딧물의 엉덩입니다.
그러니까 개미는 진딧물 엉덩이에서 나오는 우유를 먹는 셈이지요.
산에 오르면 하늘과 땅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 속에 숨겨진 그 묘한 이치도 배울 수 있습니다.
손톱 크기도 안된 작은 생명들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오늘 힘을 내보려 합니다.
어느 날 내가 돌아갈 나라도 그런 멋진 세상이 아닐까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