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작은 믿음

연약한 믿음, 그러나 꺼지지 않는 등불

by 박시룡

믿음의 역치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믿어야지”라는 결심으로 얻을 수도 없다.
그것은 어느 날, 은혜와 진리가 조용히 쌓이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한 지점—‘역치(Threshold)’를 넘어설 때
비로소 진짜 믿음으로 작동한다.학창 시절, 화학 실험 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투명한 시험관 속 노란 용액에 노란 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다섯 방울까지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여섯 번째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용액은 갑자기 붉게 변했다.

믿음도 그렇다.
처음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그 ‘은혜의 역치’를 지나는 순간,
우리 안의 색이 변한다.
두려움이 평안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그 지점.


천로역정의 ‘작은 믿음’

흔들리되 꺼지지 않는 영혼의 등불

존 번연은 순례길에 ‘작은 믿음(Little Faith)’이라는 인물을 세워 놓았다.
그는 ‘성실(誠實)’ 마을 출신으로, 누구보다 정직하고 순결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례는 어느 조용한 시냇가에서 멈추고 말았다.
잠시 쉼을 얻으려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 틈을 파고들 듯 세 명의 강도가 덮쳐왔다.

14-1 A Little Faith (2022).jpg 그림 14-1: 작은 믿음을 습격한 세 건달 — 심약, 불신, 범죄

그들은 매질하며 그의 돈주머니를 빼앗고,
생명까지 끊어 버릴 듯 위협했다.
작은 믿음은 속절없이 쓰러졌고,
그의 낯빛에는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러나 그 어떤 강도도
그의 품속에 숨겨진 가장 귀한 것—
천국의 보석, 곧 ‘구원 확신’에 대한 증표 만큼은 빼앗지 못했다.

소망이 묻는다.
“그토록 겁을 먹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보물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크리스천은 고개를 들어 조용히 답한다.
“그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붙드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지요.”


작은 믿음의 신앙

작은 믿음은 연약하다. 때로는 유혹 앞에 흔들리고, 시험 앞에서 무너진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구원의 본질만큼은 잃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레 교회 공동체의 한 성도를 떠올렸다.
오랜 세월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열심히 살아온 분이지만,
정치적 논쟁 앞에만 서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이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건 옛 군사독재보다 더한 시대입니다!”

그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선명하게 깨달았다.

마귀는 분노의 틈을 통해 들어온다.
그 틈은 작고 사소해 보여도,
믿음의 기쁨과 평화를 훔치기에 충분했다.


우리 안의 ‘작은 믿음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작은 믿음’의 자리에 서 있다.

세상의 강도들—
불신, 탐욕, 두려움—
그들이 우리 마음을 헤집으며
기쁨과 평화, 은혜라는 귀중품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작은 믿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 곁에도 작은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 있었다.

도마가 그랬다.
부활하신 주님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 믿지 못했던 제자.

14-3 Doubting Thomas (2023).jpg 그림 14-2: 의심 많은 도마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요 20:29)

베드로 역시 바다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 빠져가며 외쳤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때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

14-2 O you of little faith! (2022).jpg 그림 14-3: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주님의 꾸짖음은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흔들리는 자를 다시 일으키는 사랑의 부르심이었다.

믿음이 작아도 좋다.
흔들려도 괜찮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작은 믿음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이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니고데모와 밤의 대화

또 한 사람, 니고데모.

그는 부유하고 명망 높은 바리새인이었지만
예수를 믿는 일이 두려워 밤에 몰래 찾아왔다.

14-4 Nicodemus Finds Jesus (2022).jpg 그림 14-4: 예수님을 찾은 니고데모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십니다.”
그 고백 속에는 희미한 믿음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지성인 이었으나,
믿음은 아직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불씨는
훗날 예수의 장례 때, 향품을 들고 나온 그의 손에서
조용히 타올랐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믿음

나는 오랜 세월 과학자로 살았다.
실험실의 현미경 앞에서는 세포의 질서를,
망원경을 통해서는 우주의 질서를 보았다.
그리고 그 질서의 근원에는 언제나 말씀의 빛이 있었다.

내가 만난 물리학자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들 중 절반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이성의 끝에 선 과학자들조차,
창조의 신비 앞에서는 침묵하기 때문이다.

칼 폰 바이체커,
항성의 핵융합을 연구하던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속에서
하나님의 지문을 본다.”

믿음은 과학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을 인정하는
겸손의 시작이다.


찰나 속의 영겁

태초, 하나님의 손끝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138억 년의 시간 속에서도
그분의 사랑은 한 번도 식지 않았다.

그 먼 별, 아침별 Earendel,
129억 광년을 달려
우리 눈앞에 빛나는 그 모습은
시간이 만든 기적,
빛의 속도로 날아간 찰나의 이야기.

14-5.jpg 그림 14-5: 태초에 만들어진 아침별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탄생을 경탄하는 순례자

만약 우주 시간을 한 해로 담는다면
1월 1일, 자정에 빅뱅이 춤을 추고,
9월 초, 푸른 별 지구가 태어나고,
9월 중순, 생명의 첫 숨결이 대지를 적셨다.

자정을 앞둔 2시간 전,
인류의 조상이 어둠을 헤치고 나왔고,
23초 전, 한 농부가 씨를 뿌렸고,
12월 31일 자정 직전,
하나님은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 긴 시간의 실처럼, 그분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성령의 숨결은 138억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사랑의 진동이다.

그분은 알파요 오메가, 처음이요 마지막.
우주의 캔버스 위에서 내 존재는 티끌에 불과하지만,
그분의 손길 안에서 우리는 무한의 빛으로 이어져 있다.

“믿음이 작은 자여, 두려워하지 말라.” (눅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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