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마음
순례의 길은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크리스천과 소망이 시온산을 바라보며 마지막 언덕을 오를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거꾸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무신론자였다.
크리스천이 먼저 인사했다.
“우리는 시온산을 향해 가는 길에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요?”
무신론자는 피식 웃었다.
“나도 한때는 너희처럼 하늘의 왕국을 찾아다녔지.
하지만 이제 알았네. 그런 건 없어. 전부 인간의 상상일 뿐이야.”
그의 눈에는 세상의 냉소와 자만이 섞여 있었다.
소망이 조용히 말했다.
“그 세상 너머를 보셔야 합니다. 왕국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무신론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길 위에서 ‘무지’라는 사람을 만났지.
그는 너희 종교를 참 우습게 여기더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삶은 여전히 악한데—그게 말이 되나?
그런데도 천국에 간다니, 하하.”
소망이 대꾸했다.
“그의 이름이 무지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진리를 아는 것 같으나,
진리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지요.”
크리스천이 덧붙였다.
“성경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하셨습니다(약 2:26).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무신론자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자네들이나 천국을 찾아가 보게. 나는 현실이 더 확실하네.”
그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두 순례자는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시온산으로 옮겼다.
무지 , 믿음을 말하지만 은혜를 모르는 사람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과 소망이 가장 오래 대화를 나눈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무지(Ignorance) 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라면,
무지는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지만 복음을 모르는 자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의 법을 잘 지키면,
그분은 저를 의롭다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말만 들으면 매우 신앙적이다.
그러나 그 믿음의 중심은 은혜가 아니라 자기 의(義)였다.
겉으로는 경건하고, 교리도 알고, 기도도 하지만—
그가 신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 노력과 자기 선행이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나는 오랜 세월 직분을 감당했다.
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분히 의롭다.”
이런 신앙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자기 의는 항상 은혜를 가린다.
그리고 은혜를 잃은 신앙은 결국 무지와 같아진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무지의 신앙’이 존재한다.
겉으론 헌신해도
속으로는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자존심이 상하면 복음을 잊어버린다.
“나는 장로다.
네가 먼저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사과를 해도 진실성이 없다고 반박하며 쉽게 용서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때,
그는 자신의 직분을 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자기 의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5)
무지는 복음을 지식으로는 알았지만,
복음의 생명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지는 결국 천국 문 앞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문지기가 묻는다.
“그럼, 당신은 증명서가 있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마귀가 나타나
그를 붙잡아 허공을 갈라버리듯 지옥으로 던졌다.
그의 마지막 외침이 들린다.
“나는 주님을 안다고 했는데…!”
그 소리는 오늘날 나에게도 도전으로 들린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성 이시돌 순례길I 에서
나는 이 말씀을 마음에 품은 채
제주도의 ‘성이시돌 순례길’을 찾았다.
이 길은 단지 걷는 길이 아니라,
내 안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었다.
한 걸음마다 주님의 고난과 사랑이 되살아났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고,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2000년 전 골고다 언덕 위를 걷는 듯했다.
그곳에서 주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다.
못이 손바닥을 뚫고, 피가 흐르는데도
그분의 눈빛은 여전히 사랑이었다.
그분은 자신을 저주하는 자를 향해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눅 23:34)
한편, 주님 곁의 두 죄수.
하나는 주님을 조롱했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순간에 말했다.
“주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은 그에게 대답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멈춰 섰다.
“나는 그 죄수처럼 주님께 내 영혼을 맡겼는가?”
그 물음이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부활의 빛
해질 무렵, 순례길 끝자락에 이르렀다.
붉은 노을 속에 교회의 십자가가 서 있었다. ,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십자가의 길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곳은 오히려 부활의 문이다.
3일 후, 주님은 무덤을 여셨다.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을 보내셨다.
그분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신다.
나는 그 은혜를 생각하며 고백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이제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성 이시돌 순례길 위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