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섬세한 사랑 속으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이 현실 위에는 태산처럼 우뚝 솟은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은 우주의 신비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아침 햇살과 한 잔의 물, 이름 모를 들꽃 하나에도 그분의 섬세한 손길이 스며 있다.
이 ‘쁄라의 땅’에서 나는 그 사랑의 숨결을 만난다.
사방은 꽃으로 뒤덮였고, 새들의 노래가 멈추지 않았다.
비둘기의 울음은 부드럽게 바람에 실렸고,
낮과 밤이 섞여 빛나는 이 땅은 천국의 문턱 같았다.
천성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들려왔다.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사 62:11)
그러나 천성문 앞에는 급류가 흐르는 강이 있었다.
천사가 말했다.
“이 강을 건너지 않고는 저 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이 물었다.
“강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건너야 합니까?”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돌아갈 길은 없고, 오직 지나가야 할 길뿐입니다.”
거룩한 황홀의 자연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나는 나뭇잎 사이로 날아다니는 꾀꼬리 두 마리를 본다.
그 노랫소리는 한 생명이 새 생명을 맞이하는 황홀한 순간 같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호르몬과 빛의 자극이라 설명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창조주의 세밀한 사랑의 숨결을 본다.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치고,
땅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네.” (아 2:11-13)
한 마리 진박새가 돌틈의 이끼를 물고 둥지를 짓는 모습,
그 평범한 장면 속에 하나님의 배려가 있다.
존 스토트의 말이 떠오른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먹이시고, 황새의 이동을 인도하시며,
종달새의 노랫소리로 기쁨을 가르치신다.”
그 사랑은 거대하지 않다.
아주 작은 숨결,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Pass It On)
한 사람이 성탄 전야, 폭설 속에서 길을 잃었다.
차는 눈에 덮인 도랑에 빠졌고, 도움을 청할 방법은 없었다.
밤은 깊어졌고, 추위는 생명을 위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의식이 흐려질 즈음,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불빛이 다가왔다.
이름도 묻지 않은 두 사람은 눈삽을 들고
한 시간 넘게 길을 만들고, 차를 끌어내 주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떠나며 말 한마디를 남겼다.
“Pass it on.”
그 순간, 이방인의 귀에는
그 말이 사람의 이름처럼 들렸다.
'패시란'
눈과 추위에 얼어붙은 밤, 그는
자신을 살린 사람이 ‘패시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줄로만 알았다.
다음 날, 그는 교회에서 물었다.
“이 근처에 패스란이라는 분이 계십니까?”
그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신앙의 언어라는 것을.
“네가 받은 그대로, 다른 이에게 전하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착한 사마리아인은
누가 이웃인지를 묻지 않았다.
다친 이를 보고 멈추었고,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었으며,
그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다.
그 사랑은 설명되지 않았고,
기록되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 건너갔을 뿐이다.
신앙은 복을 받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받은 사랑이 나를 지나
다른 존재에게 흘러갈 때,
그때 신앙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그날 눈 속의 불빛처럼,
우리가 받은 은혜 또한
누군가에게 닿아야 한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것이 복음의 방식이다.
Pass it on.
성 이시돌 순례길 II - 빛으로 눈뜨다
나는 다시 성이시돌 순례길을 걸었다.
주님이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신 자리,
그분의 사랑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던 그 현장에 섰다.
“그가 눈먼 것이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요 9:3)
그 말씀은 지금도 내게 울린다.
몸의 질병, 마음의 상처, 인생의 실패—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열두 해 동안 고통받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치유되리라 믿었듯,
나 또한 지친 몸과 병든 영혼을 그분께 드린다.
“주님, 저를 외면하지 마소서.
저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주님은 나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씻었으니, 너도 이웃의 발을 씻어 주어라.”
그 사랑 앞에, 나는 다시 무릎을 꿇는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한동안 침묵 속에 머물렀다.
병의 이름이 주는 충격보다
‘생명의 남은 시간’에 대한 생각이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사람들은 물었다.
“암인데 왜 빨리 수술을 하지 않습니까?”
비뇨기과 의사인 친구는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는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남성호르몬을 차단하기 위해
고환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했지.
그만큼 전립선암은 ‘호르몬에 반응하는 암’이라는 뜻이네.”
그 말을 듣고 나니,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문제를 넘어
내 존재의 근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호르몬 하나에 흔들릴 만큼 작은 인간’—
그러나 동시에
‘그 작은 생명을 붙드시는 하나님’도 함께 보였다.
그때 나는 과학자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결심하게 되었다.
“이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더 집중하며 살겠다.”
바울의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렸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사는 믿음의 훈련—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길이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다.
“몸은 고통의 도구가 아니라,
신성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이다.”
그의 말처럼,
고통이 내 몸을 깎아낼 때마다
나는 조금 더 하나님을 닮아간다.
내 몸과 마음을 주께 드릴 때,
그 안에서
새로운 빛이 잉태된다.
그 빛은 병을 이긴 후의 빛이 아니라,
병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은혜의 빛이다.
크리스천의 사랑
병든 육신 속에서도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네 이웃을 더욱 사랑하라.”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천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상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순종이다.
감정은 변해도,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 명하신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축복하라.” (눅 6:27)
그 말씀 앞에 서면, 인간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러나 죽음의 강을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죽음조차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의 고백은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시였다.
하나님이 보신 생명의 길이
아벨의 생애는 길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그는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짧은 생애 뒤에 남겨진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제사에서 피어오르던 향기였다.
하나님은 그가 드린 예물을 받으셨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느니라.”
세례 요한도 그랬다.
세상을 향해 담대히 외쳤던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은 그를 두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지만,
그의 생애는 어느 날 갑자기
헤롯의 칼 아래 너무나 짧게 끝나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짧은 생애는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짧아서 더 선명했고,
짧아서 더 향기로웠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의 ‘길이’를 보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삶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향기를 보셨다.
순종의 향기. 진리의 향기,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 그 마음의 향기
우리는 너무 자주 ‘얼마나 오래 사는가’를 걱정한다.
건강, 나이, 시간, 미래. 하지만 성경을 읽어 내려가면
놀라울 정도로 분명한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이 아닌,
우리 삶의 향기를 보시고, 또 그 향기로 기뻐하신다는 것.
바울은 말하고 있다.
“지상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의 집이 우리에게 있다.” (고후 5:1)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이어지며, 마침내 도착하는 집으로의 귀향이다.
나는 이 말씀을 곱씹을 때마다
이 땅에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보다,
어떻게 향기롭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은
오래된 나이도, 많은 성취도 아니다.
그분 앞에서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살았다’는 고백,
그것이면 충분하다.
죽음의 강 앞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
죽음의 강이 제 앞에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 강 너머에도 여전히 당신의 사랑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사랑하신 주님,
이제는 사랑하게 하소서.
감정이 아닌 의지로,
조건 없는 순종으로,
내 이웃의 발을 씻는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죽음도 삼켜버릴
영원한 당신의 사랑 안에서
오늘도 조용히 숨을 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