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ECH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아트테크’라는 이름으로 그림 구매를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기도 하고요. 관심은 있지만 어떤 그림을 구입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SRT매거진>이 요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서울미술관을 건립한 안병광 회장은 “그림 한 점을 소장한다는 것은 인생에 여유와 여백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상에 예술 한 점, 그리고 여유한 점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요?
작가 김홍식,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다.
editor 김은아 phtographer 임익순
김홍식 작가는 스스로를 ‘도시의 산책자’라고 칭한다. 도시를 거닐며 지금 이 시대의 장면과 사람들을 포착해 이를 스테인리스강 위에 새겨 넣고, 색을 더하는 판화와 회화, 사진이 결합된 복합적인 매체로 표현한다. 그가 담아내는 풍경은 우리 눈에 익숙하지만, 그 안에는 관람자를 향한 질문이 숨어 있다.
스테인리스강에 판화와 회화, 사진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사실 전공은 서양화다. 주로 추상적인 작업을 해왔는데, ‘사진 판화’를 처음 접하고 막힌 것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회화와는 대조되는 명확함 덕분이었다. 주제로는 기록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화재 이후 숭례문이 복구되는 모습, 변화하는 거리를 걸으며 기록했다. 사라져 가고 변화하는 풍경을 무채색으로 담았다.
스테인리스강을 캔버스로 선택한 이유는.
한동안 판화 작업을 이어가던 중 판화를 찍어내는 금속 원판 자체에 매료되었다.
금속이라는 물질만이 가진 중성적인 느낌에 매료됐다. 또 도시의 장면을 종이에 찍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판에 각인하는 행위는 물리적인 의미를 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시각에 촉각의 감각을 더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스테인리스강은 정제되고 현대성을 가진 재료라고 생각했다. 스테인 리스강은 철 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가공해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특별히 도시의 장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인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의 개념에서 시작됐다. 체험하기 위해 도시를 걷는 사람 (군중)이라는 의미다. 2000년 중반쯤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나 역시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7 년간 작업을 했다. 그런데 점차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서 거리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작가들은 떠나고, 상업화된 가게들만 남았다. 비슷한 시기 올림 픽을 준비하던 베이징에서는 도시 전체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느낀 점이 많았다. 여기에 직접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기억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도시산책자’ 시리즈에서는 미술관의 명화가 아닌 군중을 주목한다.
도시의 장면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게 됐다. 입구부터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밀려서 가다 보니 <모나리자> 앞까지 도달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그림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작품들-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 등 - 역시 위대한 명작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나리자>의 들러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나 역시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 <모나리자>를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날의 경험이 여러 질문을 남겼다. 왜 ‘그’ 작품일까, 눈이 아닌 렌즈로 작품을 담는 것은 향유보다는 소비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러면서 지금껏 해온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했다. 그 인파가 ‘보들레르의 군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액자를 금빛으로 덧칠해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박물관에서 떠올린 질문들에 대한 스스로의 추론이자 질문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칭송하는 최고의 작품이 정말 값진 것인가, 아니면 교육된 것일까. 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도 안과 밖, 미술관 안과 밖, 군중과 작가 같은 경계에 대해서. 금발도 금색으로 도색했는데, 대상화되는 상징으로 통하는 점이 비슷하다고 봤다.
‘도시산책자’ 시리즈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전 과정 중 장면을 만드는 순간에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세계적인 미술관을 20여 곳 다녀왔다.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상트 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등… 파리의 루브르, 오르세 박물관은 특히 여러 번 다녀왔다. 관광객을 쫓다 보니 어떻게 생각하면 누구보다 관광객 같은 일정이다 (웃음). 같은 미술관이라고 해도 장소마다 가진 공기가 다르다. 이를테면 루브 르는 대중적인 관광지에 가까운 느낌이고 마우리츠하위스는 그보다는 작품 관람에 집중하는 차분한 분위기다. 그러한 공간마다의 특성을 사진에 담아내려고 한다. 때로는 다른 장면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합성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장면으로 만들기도 한다.
창작자로서, 작품을 향유하기보다 소비하는 관람객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가.
저런 태도가 정말 맞는 걸까 회의적으로 생각하다가도, 나에게도 역시 그들처럼 디지털 파일로라도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군중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지만, 결국 나도 군중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중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창작자와 관람자의 1인 2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관람객의 태도에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잔소리를 해주는 존재라고 할까. 개인 적으로는 꾸준히 동기 부여가 되어야 작업해나가는 힘을 얻는데, 미술관에서 만나는 관람객이 그런 원동력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작가 김홍식’은 어떤 작가로 설명되었으면 하나.
‘과정’을 가지고 노는 사람. 제 생각을 담아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개념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어떤 장면을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장면을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이야말로 나의 작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19 시국으로 여행이 힘든 때다. 앞으로의 작업은?
마스크를 쓰고도 미술관 가는 사람들 작업을 할 것 같다. 이것도 시대의 장면이니까, 그런 장면들을 모으고 있다. 누가 소장하기에는 아프고, 한시적인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꼭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국적인 액자와 틀 등의 작업을 좀 더 연구해볼 생각이다.
작가 김홍식
주요 이력 이화여대 대학원 조형예술학 서양화 전공 박사
개인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2020), 파라다이스 ZIP(2019), 환기미술관(2017) 외
작품 추정가 약 15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