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저 힘 빠져서 일 못하겠어요. 일주일간 휴가 좀 쓸게요.” 가정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연화자 선생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해서 도와드렸던 폐암환자 분이 돌아가시자 이 친구는 옆에서 보기에도 에너지가 다 빠진 듯했다. 의료진들은 환자로부터 어느 정도 간격을 두어야 하지만 때로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돌아가실 분인 거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쏟더니 저렇게 나가떨어졌다. “그래요. 좀 쉬고 나오소.” 이 친구는 워낙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에 외래에서 일할 때는 최우수 실무자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안성의료협동조합에서는 가정간호사 제도가 없던 시절부터 방문 간호를 해왔다. 요양원 등의 시설도 없던 시절 지역 사회에 병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가정간호사 제도가 생기자 조합에서 간호사 두 사람을 파견하여 공부를 하도록 하였다. 임경숙, 연화자 두 사람이 교육을 받게 되었고 시험에 통과하자 바로 가정간호사업소를 만들게 되었다. 안성의 인구는 18만밖에 안되지만 면적은 서울시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 이동거리가 멀어 시간 비용이 많이 드니 가정간호사업소는 늘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으나 이런 사람들이 있어 의료협동조합에서는 필수적인 사업소가 되었다.
최근 연화자 간호사는 몇 년째 보건예방활동을 주관하고 있다. 보건학교, 건강실천단, 통증 관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조합원을 건강의 주체로 서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항상 조합 본연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일을 만들어 내곤 하기 때문에 사무국에 최근 들어온 젊은 친구들은 이 친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쉬는 날이면 이 친구가 조합 일을 고민하다가 걸어온 전화를 가끔 받는다.
안성 같은 농촌지역에서 정규 간호사를 구하기는 정말 어렵다. 연화자 간호사는 대학 졸업 후 평택에서 일하며 농민회 일을 돕고 있었다. 어느 날 안성농민회에서 발행한 소식지에서 안성 의료 협동조합의 간호사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보았다. 다음 날로 김보라, 박복희 간호사가 찾아갔다. 평택에서 외롭게 있다가 ‘우리가 있으니 좀 더 재미나게 일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는 말에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안성 농민회 회원과 결혼을 하여 26년째 일하고 있다. 보물을 캐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