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똥 같은 날들'
혼자를 좋아하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되었다. 몇 년 전, 남편은 지방에서 일을 하고 나도 늘 일을 하다 쉬는 기간이 생겨 혼자 있을 시간이 좀 생겼다. 그렇게 바라던 혼자 있을 시간. 내 방은 없지만, 집안에 아무도 없으니 그 공간이 나만의 공간이 되고 나만의 시간이 되는 것. 집안에 누군가 있으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는 것도 나만의 시간이 되지만, 집안이든 밖이든 상관없이 집에 있고 싶으면 집에 있을 수 있고, 집 밖에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도 있는. 그런 것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혼자 있을 시간. 그런 혼자 있을 시간이 좀 생겼다.
그런데 웬걸. 신나지가 않다니. 집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혼자 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한 것 같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혼자 있을 줄 몰랐던 것 같다.
왜 혼자 있고 싶었나. 생각해 보니, 일단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울고 싶었다. 다 큰 여자사람이 우는 것. 누군가 있는 집안에서나, 모르는 사람들뿐인 밖에서나. 적절한? 행동도 아니고 누구도 바라지도 않는 행동이고 누구보다 스스로가 그런 모습을 누구에게 보이고 싶진 않다. 하지만 울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이유를 말하라면 천가지도 말할 수 있지 않나. (나만 그런 거 아니겠...) 한 달 정도는 울고 싶을 때 그냥 울었다. 그전에는 새벽 3시쯤에 곧잘 잠이 깼다. 남편도 아이도 모두 잠이 든 시간. 그 시간이 훌쩍거리기에 괜찮아서. 더 이른 시간엔 남편이 깨어있기도 하고, 더 늦은 시간에 깨어 훌쩍거렸다간 다음날 아침,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너무 부어 하루를 망치는 기분이 많이 들게 되니까. 지금은 새벽 3시에 울고 싶어서 깨는 일은 잘 없긴 하다. (누가 보는 글이든 혼자 보는 글이든) 글을 쓰다 보니 눈물로 수렴하던 어떤 마음들이 활자로 이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울기 위해 새벽 3시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울고 싶을 때 그냥 수도꼭지 틀고 울고 나니 좀 즐거워지고 싶기도 한 것 같다.
뭐 여전히 잘 울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은 마음속에 눈물주머니가 늘 가득 차서 조금만 건드려도 흘러넘칠것 같은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눈물주머니가 특정 자극? 일 때 아주 빨리 차오르는 정도? 인 것 같다. 이를 테면,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아이들의 입학이나 졸업식, 생명의 탄생이나 죽음, 나의 진심을 알아준다는 느낌과 마주했을 때. 뭐 그럴 때.
늘 좋은 마음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지 않은 마음이 오래되고 있는 것이 스스로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스스로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면 괜찮은 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오랫동안은 스스로가 괜찮지 않을 때, '아, 나 요즘 별로 안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괜찮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나 지금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인 것 같다. 누구나 각자 견뎌야 하는 어깨의 짐은 다 있는 건데. 내가 특별히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 그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고, 그 시간도 그냥 보내면 되는데, '왜 계속 마음이 괜찮지 않은 거지? 너 참 별나게 구네. 피곤하게 군다.'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럴 때 편하지 않은 마음을 글로 꺼내 보내려고 이런저런 메모를 한다. 마음이 쏟아져 나올 때면 쏟아져 나오는 대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채로. 찰랑이는 마음을 어떻게든 편안히 하고 싶어 페이지를 쌓아가고 있지만, 좋지 않은 마음일 때 쓴 글은 어쩐지 오랫동안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혼자 보는 글이면 한번 쓰고 다시 안 봐도 그만이라 마무리가 안되기도 하다. 쓰기 시작한 글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어질러진 내 마음도 계속 정리되지 않는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택한 것 중 하나가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쓴다고 생각하며 정제하고 마무리해 본다.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둔 글도 아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 되더라도, 공개된 공간에 글을 둔다는 자체가 나의 어지러운 마음서랍 한 칸은 정리를 하는 기분이 든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혼자 조용히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고 여겨져서 그런 것 같다. 특별히 이룬 성과도 없는 것 같은데 여유 없이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것 같고. 그런 나에게 오늘은 시 한 편 건네고 싶다.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읽는 동안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느껴보라고 하고 싶다.
식사법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마저 다 낭비해 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멸치똥 같은 날들'
시인이 말한 멸치똥 같은 날들이 왜 이리 긴가 싶지만.
그래도 아직 미간에 주름 없는 인상과 호기심 가득한 눈썹, 모나리자 버금가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가진 인상에 대한 로망이 식지 않은 것을 보면.
언제든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좌절에도 야무지게 생선살 발라내듯
아직은, 목구멍에 출렁이는 파도를 언젠간 잘 타고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