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읽어보시라!”
“헌법을 읽어보시라!”
최근 전(前) 대법원장이 매스컴에서 던진 이 한마디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바탕의 해프닝을 낳았다.
필자 역시 이 짧고 간결한 말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마침 내란을 겪으며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절감한 터였기 때문이며, 현재 ‘민주시민을 위한 정치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건 배경은 이렇다.
사건의 발단은 내란 특별법에 의한 내란특검의 검찰 개혁과 관련된 입법이 추진되는 가운데 사법개혁 문제가 제기되었고, 현 대법원장의 내란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에 여당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와 대법원장 증원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사법개혁을 단행하려 했다.
이에 법원행정처장과 전국법원장 회의는 이를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정치적 사법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야당도 사법부를 지지하며 이에 맞섰고,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 권력이 우선이고 임명 권력이 그 다음”이라고 발언해 여당을 거들자, 대통령· 여당과 사법부· 야당이 맞서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 결과 많은 국민 여론도 두 달래로 나뉘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전(前) 대법원장은 평소 강연과 인터뷰를 해왔던 것처럼 한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진행 기자가 이 사태에 대한 소견을 묻자, 그는 “ 헌법을 읽어보시라.”라는 한마디로 답했다.
사실 헌법은 민주국가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그 기본정신을 이해해야 마땅한 주제이기 때문에 헌법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심판을 주도한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그의 위치와 첨예한 정치적이 맞물리면서 이 발언은 담숨에 큰 이슈가 되었다.
결국, 이 사태는 단순한 제도 개혁을 넘어 정치와 사법의 권력 관계를 둘러싼 근본적 갈등으로 확산되었고, 국회와 법원이 서로의 정당성을 두고 공방을 벌이면서 사회 전반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국민 여론 또한 점점 더 양극화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공식 석상에서 발언했으니, 대통령과 여당, 혹은 사법부와 야당, 아니면 국민 중 누군가를 겨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보로 미루어 볼 때 특정을 지목한 발언은 아니었던 듯했다. 그럼에도 사법부와 야당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매체의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했고, 대통령과 여당쪽 인사들 역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을 통해 통해 맞대응했다.
논란이 커지자 전(前) 대법원장은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그 발언은 대통령을 향한 것이 아니다. 모든 위헌 사항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므로 헌법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이야기 이다.”라고 해명하며, 방송 출연이나 공개 연설을 자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前) 대법원장의 말이 이처럼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가 얼마전 탄핵 심판을 했던 대법원장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사법부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사법부의 판결은 일종의 성역으로 여겨지고, 많은 한국인은 판사들이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법관이나 판사들이 상식에 어긋난 판결을 내리거나 사법부를 최우선으로 한 독선적인 행동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는 내란재판 과정에서 일부 판사의 위법판결과 법관들의 편향적 성향이 드러나 국민 정서가 들끓고 있음에도, 일말의 개선이나 자성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고, 급기야 “ 차라리 사법 판결을 AI에 맡기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그만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상식으로 굳어 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향방에 따라 사법부의 권위를 신성시하던 과념이 무너지고, 사법개혁과 사법 권력의 약화가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필자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헌법을 읽어보시라.” 그대로한마디에 이끌려 헌법을 살펴보았다.
헌법
제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1조 ①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제12조 ①항.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수색·압수·심문 또는 처벌받지 아니하며,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강제노역을 당하지 아니한다.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66조 ④항.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행정부에 속한다.
제101조 ①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사법부에 속한다.
제104조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위 조항 가운데 제11조 ①항과 제12조 ①항은 법치주의를 규정하고, 제40조와 제66조 ④항과 제101조 ①항은 삼권분립의 원리를, 제104조는 대법원장 임명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기에 법에 따라 국가 운영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법이 있어야 하는데, 입법권이 국회에 있으므로. 행정부와 사법부는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야 한다.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선출직이고,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역시 선출직이다. 반면,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임명직이다.
결국 헌법이 가리키는 길은 분명하다.
선출직인 행정부 수장 대통령도, 임명직인 사법부 수장 대법원장도 모두 선출직인 국회의원이 만든 법에 따라야 한다. 대통령이 행정부 공무원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사법부 공무원을 임명한다 해도 그 권한의 뿌리는 국회가 제정한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권분립으로 삼권은 나란히 서 있지만, 상명하복 위계가 아니라 견제 하며 군형을 이루는 관계인데,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법을 만드는 국회가 먼저, 그 뒤를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법을 만드는 권한을 지닌 국회의원이 최고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하는 것은 어쩔 수 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1조 ②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한문장이 모든 서열을 넘어선다. 최종 서열 1위는 국민, 따라서 법은 국민의 뜻을 담아야 하고, 국회의원은 그 뜻을 헤아려 법을 만들고, 대통령은 그 법에 따라 나라를 이끌며, 대법원장은 민의에 맞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그 아래 모든 공무원 또한 오직 국민의 주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결국, 종합해보면, 권력의 서열은 국민 → 국회의원 → 대통령 → 대법원장의 순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이 말한 “선출 권력 다음이 임명 권력”이라는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동안 국민이 법을 중시하는 상식이 굳건했기에, 사법부의 판결이 일종의 성역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지니며 삼권분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 사법부가 성역은 아니라는 상식이 자리잡고 있으니, 사법부의 스스로애 대한 성찰과 자성이 절실해 보인다.
전(前) 대법원장의 말에 따라 헌법을 펄쳐 읽다보니, 결국 모든 것이 국민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국민이 헌법의 정신을 모르면 민주정치가 우민정치가 된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국민으로부터 시작해 국민으로 돌아가는 권력, 평등과 자유, 그리고 서로 견제하며 서 있는 삼권. 짧은 조문 하나하나가 이 나라를 지탱하는 뿌리이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약속임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