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접했다.
김승호 회장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세상에 살면서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다. 상대에게 이런 소리를 듣기 전에 말이다.
나는 내 생활, 즉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를 대충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로 인해 훈육 공부를 하기 전부터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특히 많은 나는 대화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고, 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인복지센터에서 실시하는 수업 <대화의 기술 워크숍>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의 대화의 기술을 다시 정리하고 싶었다.
대화에 대해 잘 짜인 커리큘럼대로 강의하고 넘어가는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업은 예상과는 달리 개개인에게 말을 하도록 유도했다.
강사 : A님은 방금 배운 공감 반영의 말을 B님과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 얘기해 보실래요?
A : 네, 흠흠(헛기침 소리). 자기야, 나 회사 사표 내려고 해. 너무 힘들어서.
B : 뭐? 아.. 회사에 사표를 낸다고? 너무 힘들어서? 그렇구나. 힘들어서 사표내고 싶었구나."
A : 어. 잠시 쉬고 싶어. 너무 힘들었어 그동안.
B : 쉬고 싶기도 하지 뭐.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네.
강사 : 지금 A님 기분이 어떠세요?
A : 아, 공감받는 거 같아 정말 좋네요.
몇 가지 대화의 기본 기술을 가르치고 강사는 계속 반복 수업을 하며 참가자를 개입시켰다. 대화 도중 평소의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강사는 "그것도 좋지만, 우선 상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해 주며 공감 먼저 해주세요!"라고 교정했다.
여태 Zoom강의는 교회 소모임 빼고는 참가자가 말을 하기보다 강사의 수업을 따라가며 듣고 필기하고 마지막에 질문 정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왠 걸, 4주짜리 강의는 첫날부터 직접 참여를 권했다. 한 가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화의 기본을 익히는 방법이었다. 실습으로 남이 하는 걸 듣고 있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자기 식대로의 말이 자동으로 '툭'하고 튀어나올 때마다 알 수 없는 쾌감도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고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남편 : 일찍 가려했는데 잠이 들었네. 지금 가.
나 : 아, 잠이 들었구나. 알았어.
평소 같았음 문자를 씹거나(보고 말아 버리거나) "어"라는 간단한 대답만 남겼을 텐데 배운 대로 해보겠다며 반영의 문자를 남겼던 거다.
그리고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 줄 겸 옥수수를 따뜻하게 데운 후 손에 쥐어 주었다. 오물오물 잘도 씹어 먹더니 몇 분 뒤 나를 불렀다.
"왜? 다 먹었어?"
"어, 샛별이 잘 머거! 좋아해!"
그러나 소파에는 옥수수 알갱이 안의 작은 씨앗 같은 것들이 징그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뭐냐고 물었더니 해바라기씨란다. 나는 그게 무슨 해바라기씨냐,며 대꾸했다.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대화의 기술이 생각나 다시 정정했다.
"아~ 샛별이가 이게 해바라기씨 같다는 거구나! 정말 그렇게 보이긴 하네."
"으응~ 마자"
"그래도 먹을 수는 있는 거야, 샛별아."
아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옆에 있던 테이블 위 놀이 장난감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도 스스로 이런 대화 연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어쨌든 아이는 대답도 안 하다가 내가 공감해 주는 말을 시도하니 "으응~"이라며 반응을 했지 않았겠는가.
정오 즈음하여 남편이 사무실에서 새벽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의식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와 달리 칭찬에 약하다. 공감해주며 고맙다는 말까지 하면 이것이 바로 남녀 대화의 끝장판 임을 알고 있었다.
'오기만 해 봐. 내가 다 공감해 주겠어!'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무슨 말을 하다가 정신없이 나는 평소의 자동 대화 모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디폴트였다.
디폴트란
영어의 'Default value'에서 유래한 말로, 별도 설정을 하지 않은 초기값, 즉 '기본 설정값'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말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말로 바뀌었고 결국 상황은 좋지 않게 흘렀다. 남편이 생각하기에 나는 불평 많고 고마워하지 않는 아내가 되어 있었다.
실행과 경험 없이는 알아도 알지 못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혼자 잘난 척하는 스스로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그었다.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