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연을 가장해서 계획을 했거나 친구였다가 연인이 되었다거나 온라인 채팅을 통해서 혹은 미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방법들이 있다.
여기서 '미팅'하면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그런 나이에 나간 미팅이었다. 그래도 커피점에 안 간 게 어디냐, 하고 대꾸하고 싶은 나이였고, 친구들과 나는 더없이 파릇했다. 그때의 우리들은 또래의 남자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었고, 길을 가다가도 헌팅이 혹시 들어 오지나 않을까 뒤를 흘끔흘끔 보던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절은 온다. '청춘'
그때를 지나가며 아름다운 걸 모르는 이는 다만 '자신'뿐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고 그게 젊음이었음을 알아차릴 뿐이다. 나에게도 그런 '이른 젊음'에 꽃을 피우던 때가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 누구에게나 예뻐 보이고 싶은 때,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싶은 때, 얼굴에 여드름이 송송 피어나는 때, '남자'란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쿵대는 때, 그런 나이를 지나가며 누군가의 소개로 미팅에 나가게 되었다. 그 한순간을 잡아 소설처럼 써내려 간 나의 글을 실어본다.
"라떼는 말이야~~" 괜한 폼도 잡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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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햄버거집의 문을 잡아당겼다. 주문을 하는 사람들과 다 먹고 일어나는 사람들로 햄버거집은 충분히 붐볐다. 뒤에서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친구 하나가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2층이라고 했어. 올라가야 해."
나는 뒤를 돌아보며 먼저 올라가겠냐고 수줍은 듯 말했고, 친구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내 손은 이미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 있었고, 옆으로 맨 애꿎은 가방끈만 만지작거리다가, 주문대를 지나 2층 계단으로 한 발 내디뎠다.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괜히 쓸어내리고, 헛기침도 두 번을 했다.
다시 발을 들어 올려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갔다.
2층은 1층보다 그리 시끄럽지도 않았고,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들도 딱 두 테이블이었다. 그리고 한 테이블에서는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남학생 두 명이 손을 동시에 들며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는데 감으로 알아맞힌 모양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친구와 그 뒤에 따라 올라온 올백머리 친구에게 눈을 맞추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 셋은 어정쩡하게 그 남학생들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 하세요."
곱슬머리 남학생이 앉으라는 시늉을 했고, 옆에 있던 눈이 큰 남학생은 뭘 좀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올백머리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아, 그런데 한 친구는 어디 갔나요?"
곱슬머리 남학생이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한 명이 빠졌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는 두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친구가 눈은 아래 테이블을 바라본 채 입을 이리저리 삐죽거렸다.
"그럼 진작 말씀해 주시지요. 저희는 모르고 셋이 나온 건데."
올백머리 친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툭 건넸다.
두 남학생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안한 듯 말문을 잇지 못했다.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얼른 뭘 좀 시키는 게 좋지 않냐,며 친구들의 얼굴을 살폈다. 올백머리 친구는 여자 하나가 차라리 빠지는 게 낫다고 우겼다. 그리고는 본인이 나가겠다고 선포했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친구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며 자신이 나가겠다고 했다. 나도 그 자리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어서 내가 나가겠다고 하려던 차, 눈이 큰 남학생이 만류하며 같이 편하게 햄버거라도 먹자,며 벌떡 일어났다. 아무거나 시켜도 되냐고 묻고는, 자기가 살 거라며 혼자 터벅터벅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몇 분 동안 어색한 시간이 이어지다가 눈이 큰 남학생이 큰 트레이에 햄버거와 음료, 프렌치프라이를 담아 가지고 성큼성큼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온 후에야 얼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골라서 먹으라며 두 가지 종류의 햄버거를 내놓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가까이에 있는 햄버거를 집어 들었다. 음료는 모두 숯덩이를 빻아 넣은 듯한 시커먼 콜라였다. 꼴깍꼴깍 무차별적으로 마셨다가는, 트림이라도 '꺼억'하고 나오지 않을까 싶어, 애써 조금씩만 빨다가 입술에 힘을 뺏다.
그렇게 앉은 지 1시간이 흘렀고,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얘기하며 짝을 굳이 나누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눈이 큰 남학생이 나에게 테이블 밑으로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또 모르는 척 그 쪽지를 받아 들고, 얼른 재킷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그때 곱슬머리 남학생이 말했다. "우리가 그래도 미팅 때문에 나온 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서로 말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대로 헤어지는가 보다 했더니 이 불공평한 상황 속에 남학생들은 또 고르겠다고 했다. 올백머리 친구가 이건 아니지 않냐고 말하다가, 문득 궁금했는지 둘은 누가 마음에 드느냐고 대뜸 물었다.
이상하게 내 마음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한 명에게 선택을 받았으니, 빨리 자리부터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 둘 셋 숫자를 소리 내어 말함과 동시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나를 포함한 여자 셋은 아무도 가리키지 않았고, 두 남학생의 손가락은 모두 나를 향해 있었다.
이 장면은 마치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다가 멈춤 키를 누른 것처럼 한동안 모든 게 정지되면서, 잠시 침묵의 시간이 몇 초 이어졌다. 나는 갑자기 머리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고, 두 친구의 눈치를 보느라 내 미간은 약간 찡그려졌다. 두 남학생 모두 내가 마음에 드는 타입이 아니긴 했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이불을 머리 위에까지 뒤집어쓰고 깔깔대고 웃으며, 데굴데굴 좁은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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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젊음은 노년이 있기 때문에 빛이 난다. 딱히 마음에는 없어도 이성에게 끌리고 싶은 여자들의 욕망은 젊은 시기에 폭발한다. 나도 그런 한 때를 살았고, 추억의 한 조각을 꺼내어 가만히 음미하는 시간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