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여자가 임신을 하면 아이의 안전에도 관심이 많지만 그 아이가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그래서 상의를 들어 올려 맨 살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의사에게 알려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내가 사는 미국에서는 초음파를 통해서, 그다음은 정확하게 피검사 후 합법적으로 아이의 성별을 알려준다.
그때부터 부모는 아이의 성별에 따라 육아 아이템을 고르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아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남자아이가 우리 집에서 빽빽 울어대는 상상을 했고, 누워서 잘 침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 이불이며 옷 등은 머릿속에 'BOY'를 염두에 두고 물건을 골랐다. 한국은 어차피 아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성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지는 몰라도 미국은 다르다. 확실한 컬러의 구분이 주어진다.
남자아이는 블루, 여자아이는 핑크.
아기 때부터 확실한 성을 구분하여 누가 보아도 '아들이군' 혹은 '딸이군'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살면서 자기 성에 대한 정체성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전부터 아기는 자기의 색으로 자기 성을 표현하는 셈이다. 부모의 도움으로. 물론 성장하면서도 꾸준히 자기의 색을 활용한다.
아는 지인은 딸 하나, 아들 하나다. 아들이 얼마나 속을 박박 끓었으면 그 엄마는 내가 "아들이래요." 하는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들이라고? 아들은 키워도 애 같고 말썽만 피우는데. 큰일이네 이젠."
그것도 아들 나름 아닐까, 싶어 마음이 조금 속상했다. 그 지인의 아들은 듬직하니 잘 큰 것 같은데 부모에겐 아직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나 보다. 하긴, 내가 예전에 아들 있어 듬직하잖아요,라고 말했을 때도 그 지인은 떫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거운 거 옮길 때만 좋아요! 뭐 힘써야 할 때!" 아, 네,라고 대답은 했어도 농담 같은 말이려니 하고 웃어넘겼었다. 그러나 그 지인의 마음은 정말이었나 보다. 이런.
또 다른 지인은 내가 임신했을 때 아들인지 딸인지를 물었었다.
"아들이야? 딸이야?"
"아들이에요~"
"아니 왜!"
"뭐가 왜... 인지"
"어쩌다 그랬어. 딸이 좋지! 딸 낳아야지 아들 낳아 뭐해!"
"네?"
왜 반응들은 모두 딸 편을 들며 딸을 낳아야 한다는 걸까 의아했다. 물론 마음 저 밑바닥에는 실은 나도 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던 때는 아들을 더 원하던 시대였고,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로 아들이 하나 있음에도 아들 욕심에 나를 아들로 생각하며 낳았다. 뜻밖의 소식 즉, 내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은 한동안 엄마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한다. 나의 친오빠를 내가 '형'이라 부르며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만 '오빠'로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X 염색체와 아빠의 X 염색체를 통해 딸로 세상에 태어났다.
딸이건 아들이건 엄마의 염색체가 아닌 아빠가 주는 염색체에 따라 성은 달라진다.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은 신의 일이지 나의 선택권은 아니었다. 내가 임신했을 때에도 모두 어쩌다 아들이냐고 희괴 망측한 말만 나에게 쏟아부었다. 본인들은 뭐 성을 선택해서 이 땅에 나왔나, 싶을 정도로 당당한 모습이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런데 왜 다들 딸 타령이냐고. 이 시대는 아무래도 딸이 인정받는 시대인가 보다. 키울 때도 아들보다 쉽고, 아이의 애교에 잔재미들이 넘쳐나며 커서는 엄마의 친구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빠르게 상승률을 타고 있다. 미디어에서도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활약이 더 큰 것을 보면 미래가 어떻게 돌아갈지 짐작도 간다.
최근에 본 책에서는 여성들이 더 부유해질 것이라고 2030년을 예상했다.
"2030년에는 여성들이 현재보다 더 부유해질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여성들이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축적할 확률이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보다 높다는 뜻이다." 마우로 F. 기옌, [2030 축의 전환]
그렇다고 아들이 별 볼일 없는 건가? 그건 또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고! 아들 낳아서 잘했다!"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 하나가 일찍 결혼을 했는데 거기서 아들을 늦게 낳는 바람에 서러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가 15년도 더 전의 일이었으니. 그 사이 세상은 바뀌었다.
내가 아들을 낳아보니 뭐 큰일 날 것도 별로 없다. 잔잔한 재미가 없다 해도 아들이어서 그런지 든든함은 있다. 애교가 많다 보니 열 딸 안 부럽고(옛날 말로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걸 이렇게 바꾸어서 사용하게 되다니), 키우는 게 좀 힘들고 에너지가 빠져서 그렇지 나름 사랑스럽고 예쁘다.
나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할 때까지 아들을 열 달 뱃속에 품고 키웠다. 그 사이 딸 타령의 사람들을 만나며 내 뱃속 아들이 듣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성이 왜 그렇게 남들은 궁금한 걸까. 뭘 보태주려고 그러나. 물론 베이비샤워가 있어서 그때 선물을 준비하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임신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줄곧 궁금해 한 건 성별이었으니 딱히 준비하려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임신을 한 여성을 본다면 제발 아들이에요? 딸이에요?,라고 자기 궁금증만 해소하고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해소만 하지 말라니 거기에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만져봐도 돼요?"라고.
신기해하는 사람들한테 배를 내주어도 될까? 하는 건 알아서 생각하시길.
지금은 여자로 태어나는 게 축복처럼 여겨질 테지만, 80년대 전에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핑크빛처럼 곱고 예쁘지만은 않은 삶이었다. 사회에서는 약자에 속해 부당함도 당했고, 결혼을 해서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논쟁을 벌여야 했고, 매달 용돈이란 이름으로 양부모님을 위해 나가야 하는 지출이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게 지금의 마흔, 사십 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다.
아마 일찍 결혼해 딸을 낳았다면 그 딸이 대학생이거나 사회인일 가능성도 크다. 나야 아이를 늦게 낳아 이제 겨우 3살이지만 말이다. 그 딸들은 엄마의 삶을 적어도 되풀이하는 인생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당차고 소신 있게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으로 뻗어 갈 준비를 할 테니 말이다.
아들이 이제는 푸대접받는 시대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아이가 결혼을 하면, 시어머니라는 이름이 하나 더 얹어질 텐데 그때는 '딸 가진 죄인'이 아닌 '아들 가진 죄인'이 될 것 같다. 준 것만큼 받게 되어 있다, 는 옛말이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중간에서 편한 마음 한 번 가지질 못하나, 싶은 게 갑자기 억울해진다. 여성을 생각하면 좋은 억울함이다.
내 아들은 결혼하면 아들일까? 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