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쌤클라우드 May 18. 2021

라면한테 지지 마세요.

다이어트 참회록

 그동안 잘 참았는데.. 저는 오늘 녀석한테 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뭐에 홀렸던 것일까요? 저도 모르게 라면을 꺼내고 냄비에 불을 붙였습니다. 끓는 물에 면을 퐁당 빠뜨리고 능숙한 스냅으로 라면스프를 탈탈 털어 냄비에 투하했습니다. 냉장고 좌측 문을 열어 파와 고추도 꺼냈습니다. 이것들을 라면에 넣으면 어떠한 맛으로 변할지 예측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재료를 넣고 마지막 1분 동안 팔팔 끓는 냄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단 5분 만에 끝났습니다. 5일 넘게 야식의 유혹을 떨쳐냈는데, 왜 저는 오늘 딱 5분을 참지 못하고 녀석한테 넘어갔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녀석한테 급습당했고, 오늘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찾아옵니다.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 지금 충분히 다이어트를 잘하고 있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


 녀석을 맛없게 먹으면 정말로 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눈물 나게 맛있을 정도로 흡입했습니다. 옆에서 아내가 안쓰럽게 보는 건지, 흐뭇하게 보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후회하지 말아야지, 후회하면 녀석한테도 지고, 스스로도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벌써 후회가 찾아오는 것일까요? 후회됩니다. 한 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제 뺨을 때려서라도 말릴텐데, 왜 그래지 못했는지 후회됩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라면을 끓이고 있는 저를 보면서 울부짖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보입니다.


 여러분은 부디.. 라면한테 지지 마세요. 이상으로 참회록을 마칩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은 왜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