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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Sep 01. 2024

출장 중 사색 (9)

말할 수 있는 만큼 들을 수 있다.

 해외에서 생활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끔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돈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해외를 나가보니 돈만 있으면 어디든 살기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사람이 살기 위해서 의식주가 필요하다 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대답이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외 생활에서 돈을 벌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라도 그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면 그 나라 언어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해외에서 생활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언어이다.


 중국에는 많은 한국 출장자들이 온다. 과거 중국으로 진출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철수했지만 아직도 많이 오는 편이다. 처음 나온 중국 출장에서 통역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업무 지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업무 지시 후 업무에 대한 결과를 확인했을 때 많이 당황스러웠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한 방향과 다른 방향의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는데, 왜 이렇게 짧게 번역되지?'

 

 처음 통역하시는 분이 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든 생각이다. 분명 나는 길게 이야기했는데, 통역하시는 분은 아주 심플하게 중국어로 현장에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이 중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상황에 맞게 잘 번역되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니 나는 다 알아들었겠거니 했다. 하지만 Test 과정은 자주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과정이 틀리니 결과도 틀렸다.


 처음에는 현장의 작업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더 겪고 난 후 이유를 알게 되었다. 통역하시는 분은 나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중국어를 알지만 현장에서 사용되는 어휘를 잘 몰랐다. 나는 현장에서 사용되는 한국어 어휘를 알았지만, 중국어를 몰랐다. 그래서 나의 제안이 통역을 통해 현장 사람들에게 도착하면 내용이 달라진다. 제조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Test 계획을 세워서 지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어 같은 언어는 뉘앙스를 전달하여 사소한 부분도 보완할 수 있지만 언어가 다르니 정확한 설명이 아니면 Test 계획에는 차질이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호텔에 있는 한국어가 가능한 매니저에게 퇴근 후 1시간만 중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아직까지도 그 매니저와 연락하고 지낸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한국에 놀러 왔었다.) 딱히 수업 교재는 없었다. 당일 회사에서 들었던 문장들을 한글로 적어서 보여줬고, 그는 그것을 적절하게 번역해서 알려줬다. 그렇게 3개월을 하니 현장에는 통역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업무지시에 대한 설명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Test 과정과 결과물은 내가 원하던 방향과 점점 비슷해졌다.


"언어는 말할 수 있는 만큼 들린다."


 이 말은 나의 어학 공부에 한 획을 그은 말이었다. 나는 언어 습득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초, 중, 고에서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 시험에서 절반도 맞추지 못했다. 물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러다 22살 군대를 제대하고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걱정이 되는 도전이었지만 제대 후 닥쳐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그곳에서 포교활동을 하시는 스님의 집에서 8개월 정도 함께 살았다. 스님은 항상 집에서 막내인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언어는 말할 수 있는 만큼 들린다."도 스님이 해주신 이야기다.


  나는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을 했지만 스님의 조언을 듣고 틈틈이 시내로 가서 거처 없이 거리에서 배회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그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담배 한 가치를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들에게 담배를 주면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화로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이 책으로 배우는 공부보다 훨씬 나에게 잘 맞았다. 내가 말하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지만 일단 그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부족한 나의 영어 실력에도 친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나의 인종과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부담 없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할 수 있는 관계였다.


 중국어도 비슷했다. 말할 수 있는 만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중국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 했다. 호주에서와는 다르게 내가 중국어를 서툴러도 대체로 중국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면 친절하게 대해줬고, 부담 없이 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대화로 공부를 하다 보니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대부분의 중국어를 글로 쓰지 못한다. 그 말인즉슨 글을 읽지 못한다 것을 의미한다. 그렇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생활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로 설명하면 결국 소통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온라인이다. 요즘은 번역 앱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좀 나아졌지만, 그래도 답답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며칠 전 저녁을 굶어 배달 앱으로 햄버거를 주문했다. 번역 앱으로 번역해 보니 이렇게 번역되었다.


'[맹렬한 육식] 1인 1 거대, 사장님 설명 : 산은 나무도 있고, 나무는 가지도 있고, 거대한 세트는 먹을 수 있어? 햄버거 1개+간식 2인분 + 음료 1병 다양하게 선택 가능, 원하는 대로! 불고기 버거는 기본적으로 스위트 칠리소스가 추가되며, 매운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비고!'


 도대체 이 햄버거 가게 사장님은 이 메뉴에 대해서 무엇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불고기 버거라는 것은 알겠고, 이 햄버거가 매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햄버거를 시켰다. 왜냐하면 제품의 사진도 햄버거가 맛있게 보였고, 제품의 호평도도 100%였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알맞은 순서가 있다.'


 호주에서 돈을 모아 잠시 어학원을 다녔었다. 기초반에는 대부분 한국인과 일본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 이야기했다. 그중 하나가 한국어와 일본어는 문법이 비슷한데, 영어는 문법 체계가 틀려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영어를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분명 구조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우리나라 외국어 교육 커리큘럼이 알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배울 때 나는 쓰기와 읽기를 먼저 배우지 않았다. "엄마", "아빠", "배고파" 등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냥 내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내가 하는 말을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되었다. 읽고 쓰는 것은 내가 듣고 말하기를 할 수 있게 된 이후였다. 다시 말해 내가 좀 더 많은 단어를 말하고 난 후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호를 익혔다. 나는 이게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순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로 글 쓰는 것이 많이 어렵다. 가끔 말도 안 되는 문법으로 작성하기도 하고, 철자도 틀린다. 읽기와 글쓰기는 언어를 습득할 때 가장 마지막 단계인데, 나는 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를 먼저 배웠다. 그래서 어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학창 시절 외국어 성적이 그 모양인 이유가 배우는 과정이 잘 못되어서 그랬다는 어쭙잖은 핑계를 대보려 한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적응하여 잘하는 사람은 있었기에 정말 핑계는 맞다. 단지 우리나라 외국어 교육 순서가 나에게 알맞지 않았을 뿐이다.


 어렵고 아무나 하기 힘든 기술일수록 습득 시간과 가치는 비례한다. 특히 언어는 익히려면 많은 시간이 드는데 그만큼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얻게 업무 능력은 비슷하다. 4년 정도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대부분 사람의 사고하는 방식은 비슷해진다. 이런 비슷한 역량을 가진 선배들 중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직장이라 함은 급여나 복지 수준이 더 좋은 직장을 의미함.)으로 이직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비즈니스 회화가 가능한 외국어를 최소 하나 이상은 할 줄 알았다.  


 몇 개월 전부터 이왕 다시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면, 좀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내가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하루뿐인 주말 침대에서 나와 사람이 많이 다니는 街口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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