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중국'
현재 내가 출장 중 머물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12년 전에도 장기간 이곳에서 상주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가끔 중국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도 한다. 그들은 중국에 대해 꽤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는 대체로 지인들에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답변한다. 그리고 이런 답변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살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정말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중국에 가보기 전까지는 나 또한 많은 안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소문들이 많았다. 밤에 혼자 다니면 장기를 적출당할 수 있고, 사기도 많이 당한다고 했다. 혹은 중국 국적의 사람들의 거친 모습이 담긴 누아르 영화도 이런 편견을 가지게 하는 것에 한 몫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인구당 발생 건수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도 매일 사기 범죄 혹은 강력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8년 만에 온 중국은 예전에 봤던 모습과 많이 달라져 놀라웠다. 첫 번째로 놀란 점은 현금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소비와 인증은 휴대폰 혹은 얼굴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회사의 출퇴근 기록은 얼굴 인식으로 이루어지고, 회사 내 어떤 자판기는 음료를 사 먹을 때도 얼굴 인식 결제 기능이 있었다. 회사 밖에서는 휴대폰으로 모든 결제가 이뤄진다. 놀라웠던 것은 한국에서 가끔 역이나 지하철역에서 보는 동냥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바코드가 그려진 프린터물은 바닥에 놓고 동냥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돈을 주려면 휴대폰으로 그 바코드를 스캔해서 돈을 온라인으로 송금해야 한다. 중국은 동냥을 하는 그들의 자금마저도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현재 중국은 휴대폰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Data가 되어 어딘가에 저장될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이는 모든 시민들에게 해당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보다 금융 부분은 더 투명할 것 같다.
두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도시는 한국보다 전기차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미 오토바이는 대부분 띠엔동이라 불리는 전기 오토바이로 대체되었고, 자전거는 대부분 공용자전거로 교체되었다. 그래서인지 12년 전 이 도시에 왔을 때보다 공기가 훨씬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CCTV가 정말 많아졌다. 한국도 많다고 하지만 아마 중국과는 비할 바가 안될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봤는데, 전 세계 CCTV 개수가 가장 많은 Top20개의 도시 중 중국이 18곳 이나 된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거리를 다니다 보면 정말 CCTV가 많다. 그리고 이런 부분과 연관이 있어서 그런지 현재 머물고 있는 이 도시도 한국만큼이나 치안이 잘 유지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밤에 다니는 시민들이 많다.)
'생각이 많아질 때'
나는 평소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아내는 나에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사실을 나도 인지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걱정거리들이 내 머릿속에서 전력질주를 한다. 이런 성격은 나를 자주 여유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새로운 환경에 자주 노출시킨다. 예를 들어 평소 가지 않던 길로 산책을 다닌다던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식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가지게 되는 적절한 긴장감은 오히려 집중력을 올려 주고 나의 불안을 많이 감소시켜 준다. 지하철을 타는 동안 책을 읽거나 사람들을 관찰하고, 목적지까지 걸으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처음 가보는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그 나라 언어로 대화하는 것은 나를 현재에 집중하게 해 준다. 사실 백수 때 이런 생활을 자주 해봤는데, 이런 생활도 자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좋지가 않다. 다 적당한 선이 있는 것 같다.
하루는 중국 사람들에게 동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이곳 생활에 좀 지쳤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한국 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슬픈 사실은 중국에 출장 와서 나의 여유를 잃게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이다. 중국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타인의 말이 모두 이해될 때보다 타인의 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나을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고 중국 현지 사람들의 일상이 묻어 난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면 좀 답답한 심정이 사라지고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그곳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잘 먹을 수 있게 하려고 목적지까지 바로 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2시간 정도 걸어갔다. 걸으면서 지나치는 사람들과 건물들을 보니 2시간도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이런저런 것을 보며 여유를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식당에 도착했고, 주문을 하기 위해서 종업원과 대화를 했다. 나의 어설픈 중국어를 들은 종업원은 더 많은 정보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빠른 말로 메뉴를 설명해 줬다. 분명 내가 외국인인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의 비장의 문장을 이야기했다.
"不好意思,我是韩国人。"
한국인이라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한 건 아니었다. 당신에게 나를 현지인처럼 보이게 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해 쓸데없는 말을 더 많이 하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함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옆에 있던 동료들과 웃었다. 같은 나라 사람처럼 생겼는데, 한국인이라고 말하니 안 믿겼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국이 워낙 크고 넓어 방언의 종류도 많아 서로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내가 중국어를 하긴 하는데 다른 지역 사람이라 소통이 안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차 저차 해서 난 그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의 이름은 '招牌大肉干排面'인데, 한국어로 번역해 보면 '시그니처 삼겹 비빔국수' 정도가 되겠다. 크고 두툼한 훈제 삼겹살과 무 말랭이와 비슷한 야채와 건두부가 들어간 비빔국수였다. 간장 베이스로 맛을 내서 그런지 달콤 짭조름한 맛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맛있었다.
그 가게에 있는 손님들과 종업원은 내가 식사하는 동안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고, 자신들의 한국에 대한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중국 음식이 어떻냐고 물어봤고, 중국이 좋은 지도 물어봤다. 심지어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다른 종업원과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해서 질문자가 늘어났다. 내가 이렇게 한국인이라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 부담되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부담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음에 또 놀러 오겠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잃어버린 여유를 다시 찾은 것이다.
다시 직장생활 시작하며 항상 여유를 잃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나는 첫 직장 생활에서 여유를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만들었다. 여유가 없어지면 짜증이나 분노가 생길 확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여유가 없는 생활이 지속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나 분노가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누군가는 여유가 많거나 혹은 적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 여유를 다 잃어버리면 종국에는 대부분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전 직장에도 많았고, 지금 내가 출장온 이곳에도 많다. 그들에게는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스스로가 챙기지 않으면 나 조차도 여유를 잃어버리고 그들과 똑같아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유를 찾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한 이유'
나를 기운 나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나를 기운 빠지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던 중요한 건 내 주변의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난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라고 생각한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지역과 문화는 다르더라도 이 사실만은 분명하다. 나의 곁에 있는 사람에 따라 내 하루의 여유로움이 달라지듯, 나도 누군가의 곁에 있는 사람으로 그 사람의 여유로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도 나의 주변인들을 통해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