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비슷, 비슷?

동서 춤추소

by 먼소리뚜버기

백종원은 ‘맛있는 여행법(2018, 동아 비즈N)’에서 “제주도 갈치조림에서 전라도 맛이 나고 전주, 부산, 서울의 된장찌개 맛이 거의 비슷해졌다. 맛의 평준화를 경계해야 지역 맛집이 살고 국내 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다”라고 했다. 같은 해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인 구스미 마사유키는 “음식은 맛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다”라고 ‘한겨레’와 인터뷰했다.

법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행정은 ‘삶의 질 향상,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공직 사회에서 이 말은 너무 익숙해서, 웬만한 계획이나 사업 설명서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문구다. 음식은 평준화를 경계하며 이야기를 담아야 하고, 행정은 삶의 질 향상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광범위한 정의 속에서 적극적인 자세만 취하면 되는 것일까? 1995년 시작된 지방자치가 30년을 맞이하는 2025년, 지방자치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주민들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특성과 이야기를 담은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비슷비슷해지는 서비스로는 그 동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다. 겉으로 보기엔 ‘형평성’ 같지만, 정작 지역의 개성과 발전에는 오히려 브레이크가 될 수도 있다.

행정 역시 평준화를 경계하고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지역마다 주민들의 삶의 형태가 다르고 지역만이 가진 문화적인 요소가 생활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 무심하지 않는다면 지역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행정 서비스에 담길 것이다.


우리 속담에 “동서 춤추소”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남에게 권함을 이르는 말이다. 잔칫날 흥에 겨워 춤추고 싶지만, 체면 때문에 먼저 몸을 쓸 수는 없고 만만한 동서보고 나가서 춤춰 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내가 먼저 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고 다른 사람이 먼저 시작하면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내가 먼저 시작해 남의 이목을 끌고, 그에 대해 좋고 나쁨의 평판을 받느니, 다른 사람이 먼저 시작하면 그 반응을 본 후에 내가 끼어들면 손해 볼 것 없다는 것이다. 얌체 같은 생각이지만, 이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라 지자체가 가진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평준화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행정 서비스의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은 청사진이 완성될 때까지 몰입과 고뇌의 기나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논리적 모순이나 사각지대가 없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점검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성공적이라면 청사진은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복사되어 전국으로 퍼지고, 마치 다른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되어 주민에게 선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방지치 평준화의 시작이었다. 벤치마킹은 ‘그냥 따라 하기’가 아니다. 좋은 사례를 참고해 우리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 살려 그보다 한 걸음 나아간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지방자치 30년 동안 시나브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 기술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사회는 더욱 다변화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 힘이 되는 건,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다른 지역과 손을 잡으면서 우리 것만의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남의 것을 둘러보기보다 우리 지역의 현실을 주민들과 함께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평준화를 벗어난 “지자체다움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경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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