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소박한 바람

살던 동네에서 품위있게

by 먼소리뚜버기
“마침내 그는 어머니가 죽음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하며 약간의 품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196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김승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에 나오는 대목이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가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어머니께 자신의 집과 직장이 있는 미주리주 콜롬비아에서 함께 살자고 하면서 나눈 대화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 대화를 나눈 소설 속 시점은 1920년대이다.

“어머니가 죽음만을 바라본다”라는 것은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잃은 큰 상실감, 앞으로 혼자 지내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에서 오는 속내 복잡한 생각의 산물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죽고 싶어 한다”라는 말은, 삶의 터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드러내며 동시에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소설 속 시점에서 100년이 지난 2025년, 스토너가 어머니에게서 느낀 감정은 노년의 삶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정책적으로 배려되어야 할 핵심 욕구다. 이것은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등장한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가능한 한 오래,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자는 생각이다.

스토너가 어머니와 대화에서 깨달은 ‘배우자가 떠난 세상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나 ‘AIP(Ageing In Place, 나이 들어서도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동네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 관한 생각은 삶의 마무리를 앞둔 이들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화려한 말이 아니라, “그냥 내가 살던 곳에서, 나답게 마지막을 맞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새로 생겨난 욕구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진실에 가깝다. 커뮤니티 케어는 이런 마음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 보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하며, 약간의 품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라는 스토너의 결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품위는 ‘존중받으며 자기답게 살 권리’에 가깝고, 자격은 ‘그걸 당연히 누려도 된다는 권리’다. “원하는 것, 약간의 품위, 누릴 자격”에 대해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지역에서 얼마나 생각을 해봤을까? 이것에 대해서는 논의되거나 논쟁의 핵심이 되지는 않았다.

‘지역사회 생활 돌봄’은 스토너의 깨달음 속에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담겨 있다. ‘원하는 것, 약간의 품위 그리고 누릴 자격’은 우리 사회가 모든 연령대와 상황의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토너의 깨달음처럼, 우리 사회도 이제 “사람이 원하는 것, 품위, 누릴 자격”이 무엇인지 더 솔직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실제 삶과 정책, 동네의 모습 속에 조금씩이라도 드러나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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