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보다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는 과학기술, 금융, 먹거리, 교통 등이 발달하고, 하루의 분·초마저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두루 갖춘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처럼 굶주림에 시달리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만석집 부럽지 않다”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정말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만큼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서 ‘저출산·고령화, 인구감소, 지역소멸’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특히 농산어촌에서는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도 안 된다”라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이미 저출산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합계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당시에는 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던 때, 합계출산율은 1.17명까지 내려가며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었고, 출생아 수도 40만 명대로 급감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저출산 위기’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고령화도 비슷하다. 2000년 11월,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를 넘기면서 공식적으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03년부터 인구 고령화 문제가 정책의제로 떠올랐고, 2004년에는 대통령 직속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가 출범했다. 지금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지방소멸에 대한 논의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4년, 일본의 민간 싱크탱크인 일본창성회의가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를 내면서, 인구 유출로 인해 지방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분석틀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니,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89개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핵심 이슈들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논의해 온 시간은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년이 넘는다. 그사이 수많은 정책과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해법을 찾지 못했다”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날까를 걱정하며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시절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저출산과 지방소멸 앞에서 비슷비슷한 대책이 쏟아지는 것에도 각자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최근 “농산어촌의 생활 기본 서비스가 안 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인구 문제와 이 우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저출산, 고령사회, 지방소멸’ 논의의 흐름과 원인을 아주 간략히 살펴봤다.
정부는 국민이 전국 어디에 살든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2010년에 ‘농어촌서비스기준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에 기준을 한 번 손봐서, 보건의료·복지, 교육·문화, 정주 여건, 경제활동 네 분야에 걸쳐 19개 항목의 목표치를 다시 정했다. 그리고 매년 관계 부처가 함께 농어촌 시·군을 대상으로 “얼마나 목표에 가까워졌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2023년 농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19개 항목 중 14개는 이미 목표치를 달성해 농어촌 지역의 공공서비스 수준이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보건의료·복지(진료, 응급의료, 영유아 보육·교육, 노인복지)와 교육·문화 부문, 일부 정주 여건(주택, 하수도 등), 경제활동(취·창업 컨설팅·교육) 항목은 2023년 기준 목표치 달성률이 높았다. 반면 상수도 보급, 대중교통, 생활폐기물 처리, 소방 출동 등 몇몇 항목은 여전히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수치로 보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상에서 불편함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무엇이 문제일까? 법과 제도가 정해 놓은 기준만 바라보며 “목표치를 달성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정작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북연구원 황영모 선임연구위원은 ‘농촌생활돌봄’’이라는 말로 그 필요를 설명한다. 장보기 대행, 말벗, 이동세탁(이불 빨래), 도시락 배달, 병원 동행, 주택관리, 가전제품·휴대전화 사용 돕기 같은 것들이다. 이런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쇠약해지거나 이동 수단이 없어 식료품을 사러 가기 어려운 사람, 혼자 살며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 생활 위생을 스스로 챙기기 힘든 사람, 영양 불균형이 걱정되는 사람, 병원에 함께 가 줄 사람이 없는 사람,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서툴러 기본적인 기능도 쓰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조금 단순화하면, 이 문제는 식품, 건강, 디지털 역량과 관련된 문제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다시 묶어보면 한 가지로 모인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 즉 “있기는 있는데, 내 손에 닿지 않는 서비스”의 문제다. 지표와 통계는 좋아졌다고 말해도, 농산어촌 주민들이 체감하는 불편과 불안은 바로 이 접근성의 틈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