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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선 기본이지

by 먼소리뚜버기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던 시절, 농·산촌 주민들의 불편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점도 많지만, 적어도 “접근성이 좋지 않던 시절의 해법”이었다는 점에서 지금 다시 돌아볼 만하다. 그중 건강, 식품, 금융이라는 키워드로 한 번 떠올려 본다.


첫 번째, 건강 관점의 국민체조다. 1977년 정부가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사회적 단합, 그리고 건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만들어 보급한 집단체조 프로그램인 국민체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체육의 생활화를 기하고 국민 체위를 향상시켜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함으로써 새 마음운동, 새마을운동에도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쉽게 말해, 모든 국민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체조로 신체 건강을 증진하고, 일상에서 운동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 직장, 마을회관에서 국민체조 음악이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맞춰 몸을 풀었다.

국민체조에 대한 다른 의견들도 있지만, 오로지 건강 증진의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면 ① 운동 시작 전후에 실시하는 여러 스트레칭 동작을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스포츠 활동 전후의 준비운동 및 마무리 운동과 유사한 목적을 갖는다. ② 특정 근육군을 강화하는 맨몸 운동의 기본적인 동작들은 맨몸 근력 운동이다. ③ 뜀뛰기 운동과 같이 심박수를 높여 전신 순환을 촉진하는 유산소 운동의 요소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 어쨌든 신체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두 번째, 식품과 상품 접근성을 높인 구판장이다. 구판장은 1970~80년대 마을마다 있던,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생활필수품을 구입해 저렴하게 나눴던 마을 점방(구멍가게)이다. ‘구(購)’는 ‘사다’, ‘판(販)’은 ‘팔다’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사서 파는 곳’이다.

마을 부녀회나 조합이 돌아가며 구판장을 운영했는데, 주로 빨랫비누, 국수, 사카린, 바늘, 실, 머리핀, 참빗, 간단한 주전부리(사탕, 땅콩, 멸치 등), 담배, 그리고 막걸리 등을 팔았다. 가까운 읍내까지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던 시절, 집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이런 구판장이 있다는 건, 곧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에 대한 접근성’을 뜻했다. 구판장 운영자들은 외상 장사도 많이 했는데, 이는 자금이 연중 순환되지 않고 수확기가 되어야 수입 발생하는 농촌 경제의 특성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교통이 발달하고, 대형마트와 슈퍼,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구판장은 사라졌다. 마을의 공동체 문화와 생활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기억 속 풍경이다. 하지만, 현실의 시각으로 보면, 구판장은 식료품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동네 버전 생활밀착형 마켓’이었다. 나이가 들고 이젠 더 이상 운전하기 어렵게 된 어르신들에게는, 어쩌면 지금도 그런 구판장이 다시 필요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 금융서비스인 마을금고이다. 1960~70년대 마을에서 운영된 금고는 마을금고 또는 농촌금고로 불리며, 경제적 자립과 계(契) 문화와 같은 주민들 상호부조의 전통을 바탕으로 만든 소규모 자본의 작은 금융기관이었다. 농업 중심 경제에서 산업화로 넘어가던 시기, 마을금고는 주민들이 스스로 돈을 모으고 관리했다. 돈이 필요할 때면 소액 대출을 해주는 농촌 경제 활성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마을 이장, 새마을 지도자, 마을 유지 등이 금고 운영을 맡았다. 주민 총회나 운영위원회에서 운영 기준을 정하고, 회계 관리와 대출 심사도 주민들이 참여한 운영위원회가 맡았다. 주민주도, 주민 참여의 금융기관이었다.

누구나 작은 돈으로 출자할 수 있었고, 저축과 대출로 금고가 운영됐다. 이자율은 낮게 책정해 농민들의 부담을 줄였고, 복잡한 서류나 담보 대신 마을 안에서 쌓인 신뢰가 담보 역할을 했다. 은행 창구가 먼 농‧산촌에서, 마을금고는 금융 접근성을 크게 높여 준 장치였다.

마을금고는 1980년대 이후 점차 농협, 신협(신용협동조합) 또는 지역 상호 금융기관으로 통합되거나 사라졌다. 기술이 발달해 스마트폰 하나로 송금과 결제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농‧산촌의 많은 어르신에게 금융은 여전히 ‘먼 동네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은행 창구가 줄어들수록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 구조가 바뀌었지만, 농산어촌의 기본적인 생활 편의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예전 국민체조, 구판장, 마을금고는 건강, 먹거리, 돈이라는 삶의 기초를 접근성이 좋지 않던 시절 나름의 방식으로 채우려는 시도였다.

이 세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주민이 접근할 수 있는 기본 서비스였고, 단순히 편의를 넘어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고 말을 섞게 하는 사회적 연결망 역할을 했다. 또한 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우리 삶은 우리가 같이 챙긴다”라는 감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되살린다고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 농산어촌은 고령화, 디지털 격차,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 필요한 건 “국민체조, 구판장, 마을금고”가 했던 역할을 오늘 현실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나이 든 주민이 몸을 움직이고, 밥을 챙기고, 돈과 정보를 다루는 데 큰 벽을 느끼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단순한 복지 혜택을 나눠 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을이 스스로 버티고 서로를 챙길 힘을 키워 주는 쪽에 더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접근성이 좋지 않던 시절의 기억은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오늘의 해법을 찾아가는 좋은 힌트가 될 수 있다. 과거에서 본 기본 서비스의 정신을 오늘의 기술, 오늘의 농산어촌 현실과 어떻게 이어 붙일 것인가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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