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조금의 기준으로 ‘나름의 해석’을 알아간다
시골에서 살다가 올해는 일상을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추운 날씨에 외풍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느꼈고, 무엇인가를 배울 기회의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것 또한 삶의 만족도를 높여 주었다.
아침마다 봉지 커피를 마시던 습관에서 스마트폰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출근길에 찾아서 일상을 시작한다. 다른 환경에 길들여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매일 가다시피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모닝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세 명이다. 아침 근무를 며칠씩 돌아가면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리스타가 누구냐에 커피 맛에 영향을 준다.
내가 사용하는 커피 주문 앱의 메뉴 중에 ‘물/우유 조금’이라는 선택사항이 있다. 나는 커피의 양이 많아서 물을 조금만 넣어달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모닝커피 바리스타가 누구냐에 따라 ‘물 조금’의 기준이 달라 특별한 커피 맛을 본다. 나름 다양한 맛의 커피를 즐긴다는 장점도 있어서 좋다. 예전에 바리스타 맛보기 실습을 할 때 강사님이 매일 똑같은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광고에 나오는 캡슐을 이용하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기계는 설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명령어라 할 수 있는 버튼을 누르면 작동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기준이 있더라도,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움직인다. 내가 말하는 ‘나름의 해석’은, 그 사람만의 기준과 스타일이 스며든 이해 방법이다.
나름의 해석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사람 간의 일에 대해 논쟁하고, 불만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예상치 못한 기쁨과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물이 훨씬 덜 들어간 진한 커피 덕분에 몽롱한 아침이 또렷하게 깨어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물 조금’이 거의 아메리카노에 가까워 속이 부담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하루가 시작되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버튼을 누르지 않아 생기는 차이, 그 작은 차이가 하루의 분위기를 바꾼다.
도시에 와서 “무엇인가를 쉽게 배울 수 있다”라는 말도 결국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하철역 앞에 있는 문화센터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화면 낭독기가 잘 작동하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이 배움의 문이 된다. 나에게는 출근길 커피 주문 앱이 일터의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하루의 리듬을 정리해 주는 작은 ‘접근성 도구’가 되었다. 같은 기능을 두고 누구에게는 편리함이, 누구에게는 여전히 불편함이 된다.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도 각자의 ‘물 조금’이 숨어 있다.
접근성은 사람마다 다른 ‘물 조금’을 어떻게 맞춰 가느냐의 문제 같다. 그래서 나만 편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나름의 해석’을 조금씩 알아가며 더 많은 사람이 덜 힘들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맞춰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물/우유 조금’ 옵션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여 본다. “서로 다른 해석이 만들어 내는 차이를, 오늘은 조금 더 부드럽게 마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