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좋은 말은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지키는 일뿐

by 먼소리뚜버기

1982년, 비엔나 강령은 고령화사회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큰 그림’에 해당하는 문서였다. 이 회의를 통해 유엔은 고령화 문제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이후 1991년 유엔 총회에서는 내용을 조금 더 간결하고 현실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게 정리한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United Nations Principles for Older Persons)」을 채택했다.

이 원칙은 비엔나 강령에 담긴 방대한 정책 제안을, 인권을 중심에 둔 실천 지침으로 다시 정리한 문서라고 볼 수 있다. 목표는 단순하다.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권리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문서는 독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존엄성이라는 다섯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모두 18개의 권리와 권고를 제시한다. 비엔나 강령이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큰 방향을 제시했다면, 유엔 원칙은 “노인에게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두 문서는 서로 연결해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비엔나 강령이 각 나라와 국제사회에서 고령화에 대한 정책의 방향과 협력의 필요성을 알린 문서라면, 1991년 유엔 원칙은 그 방향을 ‘노인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실천 지침으로 다듬은 문서다. 예를 들어 비엔나 강령에서 강조한 사회복지, 건강, 주거 정책의 중요성은 유엔 원칙 안에서 ‘노인이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적절한 주거와 복지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체화한다. 또 비엔나 강령이 가족과 지역사회의 역할, 사회참여를 강조했다면, 유엔 원칙은 노인의 사회적 참여, 자원봉사, 단체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명시하면서 실제 삶과 연결하려 했다.

물론 이 문서에도 한계는 있다. 먼저, 이 원칙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권고’에 가까운 문서다. 법처럼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각 나라가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로 요구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 결국 노인의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는 각 나라의 의지와 선택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문서에 적힌 내용이 너무 두루뭉술하다는 점이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많지 않다. 독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존엄성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는 분명하지만, 이를 실제 국가 정책과 예산, 제도로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나라별로 이 원칙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여기에 더해, 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큰 걸림돌이다. 각국의 의료와 복지 현장에서는 여전히 ‘나이도 많으신데 그 정도면 됐죠’라는 식의 편견과 무관심이 남아 있다. 가족이나 시설 안에서의 노인 학대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원칙이 있어도 노인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이 모든 점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제 규범은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엔나 강령과 유엔 원칙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권리가 줄어들어서는 안 되며, 노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 이제 남은 숙제는, 이런 원칙들이 문서 속 문장에 머물지 않고 각 나라의 정책·제도·현장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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