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많은 선수는 누구일까?
2002 FIFA 월드컵은 21세기에 처음 열린 월드컵이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공동 개최한 역사적인 경기였다. 우리 선수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에 가지 못한 사람들도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가득 메웠다. 경쾌한 박수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던 “대~한민국” 함성은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그때는 정말, 모두 하나가 되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축제의 시간 속에서도 유엔은 조금 다른 미래를 보고 있었다. 각 나라의 인구구조가 어떻게 바뀌어 갈지, 특히 고령화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논의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유엔은 1982년 제1차 세계 고령화 회의에서 ‘비엔나 국제 고령화 행동계획(비엔나 강령)’을 채택한 뒤, 20년이 지난 2002년에 제2차 세계 고령화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문서가 ‘고령화에 관한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Madrid International Plan of Action on Ageing, MIPAA)’이다.
왜 2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의 간격이 생겼을까?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령화는 주로 선진국의 고민으로 여겨졌다. 개발도상국까지 포함해 국제사회 전체가 “이건 모두의 문제”라고 받아들이고, 함께 대응할 틀을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비엔나 행동강령을 바탕으로 여러 정책을 준비했고, 1991년에는 유엔이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United Nations Principles for Older Persons)」을 채택하며 고령화 관련 국제 규범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상황은 더 분명해졌다. 인구 고령화가 경제와 사회 구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노인이 늘어난다’라는 수준이 아니라, 노동시장, 복지 재정, 가족 구조, 지역사회관계까지 모두 영향을 받는다. 그러자 각 나라가 제각각 대응책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이기 시작했고, “함께 참고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이다. 이 계획은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목표로 삼고, 각국이 고령화 정책을 설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순히 “노인을 보호하자”라는 수준이 아니라, 고령화를 인권과 발전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국제행동계획의 핵심은 노인을 보호받아야 할 약한 존재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 발전에 계속해서 기여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하며, 모든 세대가 고령화사회의 혜택을 나눌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이 계획은 크게 세 가지 우선 영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영역은 ‘노인과 발전(Older Persons and Development)’이다. 노인을 단순히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은퇴했다고 해서 사회와 경제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경험과 지식, 능력을 갖춘 중요한 구성원으로 본다. 그래서 이 계획은, 원한다면 더 오래 일할 기회를 보장하고, 소규모 자영업이나 사회적 경제, 자원봉사 같은 생산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배울 수 있도록 평생학습 기회를 넓히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시한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세대 간 연대에 대한 강조다. 나이가 들며 쌓인 지식과 경험이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도록, 세대 간 교류와 대화를 촉진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본다. 그렇게 할 때 고령화는 단지 부담을 키우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전체의 지혜와 자산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영역은 ‘노년기의 건강과 삶의 질(Advancing Health and Well-being into Old Age)’이다. 건강을 단순히 “아프냐, 안 아프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으로 본다. 그래서 병이 생긴 뒤에 치료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만성질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아프기 전에 막을 수 있는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만들며,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금연·절주 같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도록 돕는 정책을 함께 이야기한다.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장기요양서비스를 마련하는 것도 이 영역에서 중요한 과제다.
여기에 더해, 노년기의 정신건강, 적절한 영양, 재활 서비스,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지원 체계까지 포함해,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강조된다. 요약하면, 나이가 들어도 가능한 한 오랫동안 몸과 마음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내 삶을 내가 꾸려 간다”라는 감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이 영역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영역은 ‘스스로 삶을 꾸려 갈 수 있도록 돕는 환경(Ensuring Enabling and Supportive Environments)’이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단순히 집 안 구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집 안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하는 문제부터, 동네 골목길과 인도, 대중교통,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일상에서 이용하는 돌봄 서비스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이 계획에서 노인이 존엄과 자율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으려면, 우선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 환경이 필요하다고 본다. 집 근처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기반 돌봄 서비스도 중요하다.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병원이나 시장,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교통수단이 마련되어야 하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필수가 된 시대에 디지털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겨우 먹고사는 수준”을 유지하게 하는 정책이 아니다. 노인이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이웃과 계속 연결되고, 동네 모임이나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걷는 길이 위험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하며 필요한 정보가 모두 온라인으로만 제공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실제 삶에서는 빛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은 노인이 안전하게, 그리고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보고 있다.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은 법처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구속력 있는 문서는 아니다. 그렇지만 각국 정부가 고령화 정책과 제도를 설계할 때 ‘최소한 이 정도는 지향해야 한다’라는 기준점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인권의 관점에서 노인의 자율성, 존엄성, 참여권을 분명히 함으로써, 단순히 복지급여를 늘려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계획은 고령화를 모든 연령층이 함께 나누는 문제로 본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과 연대를 통해 사회 전체가 고령화의 혜택과 부담을 함께 나누는 구조, 그리고 지속가능한 고령사회를 만들자는 합의에 가깝다.
고령화는 피하고 싶은 위기만이 아니라, 인류의 발전과 인권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기회가 될 수 있다. 노인이 존중받으며,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사회에 계속 참여할 수 있을 때 고령화는 부담만 늘리는 현상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풍요롭게 하는 공동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함께 나누자는 제안이 바로 2002년, 월드컵의 함성과 동시에 세상에 나온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