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말고, 더 나은
초기에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렸던 코로나19의 우리나라의 첫 확진자가 2020년 1월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한순간에 극도의 긴장 속으로 내몰렸다. 전 세계가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특히 고령층의 감염과 사망이 늘어나면서 익숙했던 관계의 일상은 단절로 바뀌었다. “조금만 참아보자”라던 시간의 끝은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되었고, 경제의 시계마저 멈춰 선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에 「Decade of Healthy Ageing Baseline Report」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이어질 ‘건강한 고령화의 10년(Decade of Healthy Ageing)’을 시작하면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기준점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물음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사는 시대에, 그 ‘오래’가 과연 더 나은 시간일 수 있을까?”
WHO는 여기서 ‘건강한 노화(healthy ageing)’를 이렇게 정의한다.
“Healthy ageing is the process of developing and maintaining the functional ability that enables well-being in older age.”
조금 풀어 말하면, 나이가 들어도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능력을 키우고 유지해 가는 과정이 곧 건강한 노화라는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단순히 병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는 물론이고, 내가 살아가는 환경까지 포함해 “내가 내 삶을 스스로 꾸려 갈 수 있는 힘” 전체를 가리킨다.
이 보고서는 건강한 노화를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요소를 함께 보자고 제안한다. 먼저 내재적 역량(Intrinsic Capacity), 즉 내 안에 있는 힘이다. 신체적인 능력과 기억력, 판단력 같은 인지 기능이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는 기능적 능력(Functional Ability)이다. 이건 내 안의 역량과 주변 환경이 만나서 실제로 드러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씻고 먹고 옷을 입을 수 있는지, 집 안과 동네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지, 배우고 결정하고 계획할 수 있는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가 모두 기능적 능력의 모습이다.
셋째는 환경(Environments)이다. 내가 살아가는 집과 동네, 교통, 서비스, 정책, 그리고 나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까지 모두 포함된다. WHO는 건강한 노화를 “사람”과 “환경”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결과로 본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는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WHO는 말로만 “건강한 노화가 중요하다”라고 반복하는 대신, 먼저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2020년을 기준점으로 삼아 각 나라의 노인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기능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어느 정도 스스로 해내고 있는지 숫자와 지표로 그려 낸다. 앞으로 10년 동안 변화를 이야기하려면, 우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다음에는 단순히 현황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었을 때와, 각 나라가 적극적으로 정책과 환경을 바꿔 나갔을 때, 2030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여러 가능성을 그려본다.
여기에는 “노인은 약하고, 나라는 도와주는 존재”라는 익숙한 구도를 넘어서, 노인 자신과 가족, 지역사회, 정부와 민간단체가 어떻게 함께 힘을 모아 기능적 능력을 키워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이제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서로 비교하고 배우면서 나아갈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필요하다.” 어느 지역에서는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디에서는 어떤 환경이 노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했는지, 경험과 데이터를 나누면서 함께 배워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2023년 이후 어떤 식으로 협력을 강화할지, 어떤 지표를 보며 변화를 추적할지, 보고서는 완성본이라기보다 “지금부터 시작하자”라는 약속을 정리해 둔 작업이다.
WHO가 42개국의 자료를 모아 분석해 보니, 노인 약 7명 가운데 1명은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충분히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밥을 먹고, 씻고, 옷을 입고,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 자체가 이미 버거운 사람들이다. 보고서는 이런 현실을 지적하며, 가정과 지역사회가 노인의 역량을 키우고 지지해 줄 ‘지원적 환경(enabling environments)’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는다. 많은 나라에서 노인 관련 데이터와 통계가 부족해,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으면, 보호받기도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령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끝없는 부담과 위기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로 바꿀 것인지는 국제사회와 각 나라, 그리고 우리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WHO의 「Decade of Healthy Ageing Baseline Report」는 고령자의 존엄과 권리를 중심에 두고, 사회·경제·문화 영역에서의 참여를 넓히는 방식으로 건강한 고령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 보고서는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더 오래 사는 삶이, 과연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함께 만들기 위해, 지금 무엇을 바꾸고 어디서부터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고 요청하는 출발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