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의 접근
그동안 나이 든 사람을 볼 때, “어디가 아픈지, 무슨 병이 있는지”에 먼저 눈을 돌렸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충분히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대응을 위해 2017년 처음으로 「고령자를 위한 통합 돌봄(Integrated Care for Older People, ICOPE)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나이가 든 사람의 건강을 ‘어떤 병이 있느냐’만 보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기초 체력과 일상생활을 스스로 해낼 힘에 주목한다. 운동, 식사, 시력·청력, 기억력과 생각하는 힘, 우울감 같은 여러 가지 생활 영역을 살펴보고, 연구를 통해 효과가 검증된 방법으로 이 능력들을 지키고 채워 주는 데 초점을 둔다.
2019년 WHO는 이러한 개념을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ICOPE 핸드북을 발간했다. 여기에서는 내재 능력 감소를 조기에 발견하고, 사람 중심 평가를 거쳐 개인화된 케어 플랜(돌봄 계획)을 수립하며, 전문 의료와 지역사회 참여, 보호자 지원을 포함하는 5단계 돌봄 경로를 제시했다. 또 걷기 속도와 균형, 영양 상태, 기억력 같은 것을 동네 의원에서도 간단한 검사로 살펴볼 방법을 정리해 두었다. 예를 들어, 걷기와 균형을 보는 검사(SPPB), 영양 상태를 확인하는 질문지(MNA), 기억력과 치매 위험을 간단히 살펴보는 검사(Mini-Cog) 등이 포함된다.
2024년에 출간된 ICOPE 핸드북 제2판은 이러한 초기 경험을 바탕으로 더 실용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내세웠다. 돌봄 과정은 5단계에서 4단계로 좀 더 단순해졌고, 사회적 지지, 보호자 지원, 요실금 관리가 새롭게 중요한 돌봄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환경, 보호자의 부담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보호자를 위한 지원이 많이 늘어났다. 마음 건강 상담, 돌봄 교육, 경제적 지원, 잠시 쉴 수 있는 돌봄 서비스 등이 강조되고, 어르신이 스스로 건강을 살피고 관리할 수 있게 돕는 것도 핵심이 됐다. WHO는 문자 메시지로 건강 정보를 보내 주는 ‘mAgeing’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이 프로그램은 날마다 조금 더 걷기, 약 제때 챙겨 먹기, 사람들에게 안부 전하기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문자를 보내 동기를 북돋아 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예방 행동을 실천하도록 돕고, 약을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 먹게 하며, 사람들과의 연결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24년 핸드북의 특징은 사람 중심(person-centred) 접근과 지역사회 통합을 강조하는 데 있다. 집과 동네, 교통, 복지서비스까지 나이 들어도 살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자원봉사자, 시민단체, 어르신 모임 등 동네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돌봄이 특히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백신 접종, 환경 수정, 디지털 헬스 기술, 계단식 돌봄 모델 같은 새로운 지원과 도구도 포함되어 고령자의 건강 요구에 더욱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나아가 ICOPE는 1차 의료와 장기요양의 연계를 통해 연속적인 돌봄을 보장하고,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도모하며, 고령자 개개인의 필요와 선호에 맞춘 개인화된 돌봄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런 변화는 돈과 사람이 넉넉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나이 든 사람들이 필요할 때 돌봄을 더 쉽게 받도록 하려는 노력과도 연결된다.
이제 고령화는 병원 진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 관계, 집과 동네 환경까지 삶 전체를 함께 살펴야 하는 문제라는 데 전 세계가 점점 더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