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부터는 조금 더 가볍게, ‘접근성’이라는 말을 생활 쪽으로 끌어와 보려 한다.
‘접근성(Accessibility)’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제일 쉽게 떠오를까? 아마도 장애인이 떠오를 수 있고, 어르신들, 그리고 또 숫자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보건소까지의 거리가 몇 킬로미터인지, 버스 배차 간격이 몇 분인지, 휠체어가 넘어야 할 문턱의 높이가 몇 센티미터인지. 우리는 그 숫자를 줄이거나 숫자 맞추기에 열중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접근성을 숫자로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도로 보면 분명 10분 거리인데, “거긴 너무 멀어서 못 가”라고 손사래 치는 어르신이 계신다. 반대로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돌아가야 하는 경로당인데도, “거기 가면 사람이 있으니까”라며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분도 계신다.
내가 말하는 접근성은, “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가고 싶어지느냐”에 가깝다. 지도상의 거리가 아무리 가까워도, 내 마음이 닿을 수 없다면 그곳은 ‘접근 불가능한’ 곳이다. 반대로 아무리 멀어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의 온기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곳은 내 삶의 반경 안으로 들어온다.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신청 서류가 복잡해 어르신이 한숨을 쉬며 돌아선다면, 그 제도는 ‘접근 불가능’ 한 것이다. 도시락이 매일 문 앞까지 정확히 배달되더라도, 그 밥을 먹는 방 안에 온기가 돌지 않고 고립감이 가득하다면, 그 복지는 아직 사람에게 ‘도착’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접근성’을 사전적 정의와 다르게 다시 쓰고 싶다. 나에게 접근성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문턱을 없애는 공사가 아니다. 제도가 사람의 존엄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스며드는 것, 그리고 서비스라는 차가운 명칭이 ‘사람의 온기’를 입고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는 것이다.
도시락통이 아니라 안부가 건네지는 거리, 진료 기록이 아니라 아픈 마음이 읽히는 거리,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없이 “도와달라”라고 손을 뻗을 수 있는 심리적 거리. 나는 그런 마음의 거리(Distance)를 좁히는 일이야말로, 숫자로 된 인구 그래프와 예산서 너머에서 우리가 기어이 찾아내야 할 ‘진짜 접근성’의 좌표라고 믿는다.
이제부터는 그 보이지 않는 길을, 내가 만난 장면들로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접근성을 이렇게 다시 생각하다 보면, 결국 질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끊어진 지점들을 어떻게 다시 잇고, 너무 날카롭게 갈라진 경계를 어떻게 부드럽게 만들 것인가. 이상하게도 그 답을 찾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단어가 둥둥 떠올랐다.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 그리고 경계를 흐릿하게 뭉개주는 ‘가우시안 흐림 효과’. 도대체 접근성 이야기에서 왜 이 두 가지가 튀어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