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네

버거움과 외로움 사이

by 먼소리뚜버기

어느 날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 가슴에 툭 하고 걸렸다.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네.” 평생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낯설고 아프게 다가왔다.

어머니도 해방둥이시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금도 그 시골에서 사신다. 아버지를 황망히 떠나보냈을 때, 어머니는 의외로 슬픔을 잘 이겨 내시는 듯했다. “어머니니까.”

자식들 앞에선 늘 담담해지려 애쓰셨지만, 말로 다 하지 못한 내면의 슬픔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에게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울림이 전해지곤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잔잔한 파동의 여운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슬픔의 곡선은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머니 세대는 슬픔을 표현하기보다 ‘참아서 이겨 내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오셨다. 농경사회에서 가족은 정서적 울타리이기도 했지만, 당장 농사일을 함께 해내야 하는 귀한 ‘일손’이기도 했다. 관습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높았던 시절이라 여성들은 그저 묵묵히 뒤따를 뿐이었다.

일터인 논밭에서도 남녀의 역할은 엄연히 달랐다. 힘쓰는 논일은 주로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밭일은 여자가 맡았다. 품앗이로 왁자지껄한 모내기 철이나 수확 철이 아니면, 어머니들은 대개 밭고랑 사이에 파묻혀 홀로 호미질했다. “힘들다”, “슬프다”라는 말 한마디 건넬 사람 없이, 오직 흙과 바람을 벗 삼아 이어지는 침묵의 노동이었다. 서로의 처진 어깨와 거칠어진 숨소리만으로 “아, 오늘도 고단했구나” 하고 짐작하던 시절이었다.


다시 어머니 이야기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평소 깔끔한 성격만큼이나 건강관리도 참 잘하신다. 식사량도 꼼꼼히 조절하시고, 제일 좋아하시는 게이트볼장에 나가 채를 휘두르는 것도 거르지 않으신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면 매월당 김시습의 ‘노목개화 심불노(老木開花 心不老)’라는 말이 떠오른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듯 몸은 쇠했어도 마음만은 늙지 않는다는 그 말처럼, 어머니는 여전히 청춘인 사람 같았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 걸까. 그 활기차던 어머니가 요즘 들어 가끔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얼마 전, 어머니보다 연세가 조금 많은 옆집 할머니가 노치원(주간보호센터)을 이용하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낮에 옆집이 비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어쩌면 마음 놓고 기대던 구석이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옆집 아주머니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노치원에 가니 따뜻한 밥을 챙겨 줘서 아주 좋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오래 게이트볼을 같이하시던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한 분도, 어머니 말로는 영양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였다고 했는데, 결국 그분도 노치원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뒤로 게이트볼장에서는 그 할아버지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풍경들을 보며, 문득 어머니 세대가 지나온 길을 가만히 되짚어 보게 된다. 건강이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노년까지 차곡차곡 쌓이는 탑과 같다. 1940년대 해방 전후부터 1950년대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배고프고 혹독한 시기였다. 이때 태어난 어머니 세대는 인생의 기초를 다지는 태아기와 영유아기를 만성적인 굶주림 속에서 보냈다.

기록들을 들춰보면 당시 세대의 키와 체격은 지금보다 눈에 띄게 왜소했고, 먹는 것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 안타깝게도 가난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릴 적 배고픔은 몸이 잊지 못한다는 말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머니를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철렁한다. 또한 전쟁 통에 굶주리며 자란 아이들은 노인이 되어 당뇨나 고혈압 같은 병을 더 많이 앓는다는 보고서의 기억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적 겪은 그 모진 결핍이 팔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남아 어머니 세대를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생긴 병이 아니다. 어릴 적 겪은 배고픔이 몸속 어딘가에 숨죽여 있다가,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진 틈을 타 이제야 고개를 드는 것이다. 마치 갚지 못한 빚을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과거의 결핍이 노년의 질병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나니, 어머니가 무심히 던진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평생 가족을 위해 밥 짓는 것을 ‘당연한 의무’이자 ‘사랑’으로 믿으며 살아온 분이, 생전 처음으로 ‘내려놓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 순간 같아서다.

밥은 늘 생존을 위한 기술이었고, 가족을 하나로 묶는 매듭이었으며,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그런 밥을 짓는 일이 이제 버거워지셨다면, 그것은 단지 몸이 늙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상실 이후의 공허는 식탁에 가장 먼저 찾아온다. 밥상을 차리는 손길이 느려지면, 하루의 리듬도 같이 느려진다. “옆집이 비어 마음이 걸린다”라는 어머니의 말씀 속엔, 끼니를 챙기는 고단함보다 ‘마주 앉을 사람이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두려움이 더 짙게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은 단순히 ‘밥이 귀찮다’는 뜻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무심한 한마디 속에 숨겨진 진짜 허기를, 그 껍질을 조금 더 벗겨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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