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들을 수 없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리
내게 후회가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장면은 아버지의 건강을 떠올릴 때다. 그때 나는 ‘제도가 있었는가?’보다 ‘내가 거기에 닿을 수 있었는가?’를 더 많이 놓쳤다.
아버지는 해방둥이 셨다.
굶주림과 전쟁의 시간을 지나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마을전화가 가정전화·개인전화로, 라디오에서 흑백·컬러텔레비전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모든 변화를 몸으로 겪은 세대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시대의 변화를 그냥 구경만 하는 분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먼저 적응하고, 먼저 써 보고, 먼저 만져 보던 분이셨다. 요즘 말로 하면 ‘얼리 어답터’다. 젊었을 때 특허출원까지 하셨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 내가 괜히 이런저런 것에 호기심이 많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값진 유산이 있다면 바로 호기심이다.
하지만, 이 세상 소풍이 끝나던 순간까지, 아버지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식사 후면 어김없이 들리던 부스럭거리는 약봉지 소리가 그땐 왜 그리 당연하게만 들렸을까. 새로운 기계에는 그토록 빠르셨던 아버지가 정작 본인의 몸을 돌보는 제도 앞에서는 왜 그리 무력하셨을까. 나는 끝까지 아버지를 그저 ‘어디 몸이 좀 편찮으신 분’으로만 여겼지, 우리가 어떤 도움을 더 받을 수 있을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버지와 이별한 뒤, 나는 보건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여러 사업을 보고, 안내문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걸 몰랐을까.”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찾아봤다면, 아버지도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었을 텐데.”
그 아쉬움은 지금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뭐, 다 비슷하게 사는 거지” 하는 안일함도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정보에 다가가려는 의지’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접근성’이라는 말에 유난히 마음이 간다.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만큼, 그 제도에 내가 닿을 수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배고픈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대신 어머니가 가끔 들려주셨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이야기, 도시락에 넣을 반찬이 마땅치 않던 시절의 이야기, 쌀을 아껴 먹이느라 본인은 한 숟갈 덜 먹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버지의 한 마디가 있다.
전화하면, 시간과 상관없이 첫마디는 늘 같았다.
“밥은 먹었나?”
아침이든, 점심이든, 밤 열 시든 상관없었다. 안부와 걱정, 애정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그 다섯 글자가 되었다. 배고픈 시절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확인이 곧 “밥 먹었냐”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대답 또한 거의 늘 비슷했다.
“지금 밤 아홉 시예요.”
그건 ‘이 시간까지 안 먹었겠어요?’라는 뜻을 퉁명스레 돌려 말한 것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동문서답이다. 아버지는 밥을 물었고, 나는 시간을 말했다. 그런데 둘 다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밥 챙겨 먹고 다니냐?”라는 질문과 “이 시간이라면 이미 먹었어요”라는 답. 방식이 다를 뿐, 서로의 안부가 가운데 놓여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말씀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밥은 먹었나?”라는 말은,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은 챙겼냐?”는 질문이었고, “지금 밤 아홉 시예요.”라는 말은,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를 잘 보내고 있어요”라는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밥에 대한 애정이 많다. 배고픔을 참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밥 한 끼가 “누군가는 나를 걱정하고 있다”라는 기억과 연결되어 있어서다. 밥을 잘 먹고 있는지 묻는 사람, 밥을 먹었는지 확인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누군가에게는 가장 단순한 돌봄의 형태이고, 삶에 닿는 가장 기본적인 접근성이다.
이제는 아버지의 전화를 다시 받을 수 없지만, 가끔 혼자 밥을 먹다가도 마음속에서 그 질문이 들린다.
“밥은 먹었나?”
그럴 때면 나도 속으로 대답해 본다.
“네, 아버지. 오늘도 잘 챙겨 먹었어요.”
그 짧은 질문과 답을 떠올리며 나는 또 깨닫는다.
돌봄의 시작은 거창한 제도나 복잡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밥은 먹었냐?”라고 묻고, “응, 먹었어.”라고 답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이 이어져, 언젠가는 누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오늘 밥은 괜찮게 먹었어?”라고 묻고 답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남겨 준 가장 짧고 단순한 인사말 한 마디가, 내게는 그렇게 오래가는 숙제가 되었다.
돌봄의 시작이 “밥은 먹었나?” 같은 짧은 안부라면, 그 안부가 무거워지는 순간은 오히려 ‘내 손으로 밥을 짓기 어려워질 때’부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