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영어 간판에 꽂혀 눈돌리다

시니어에 대한 관심을 갖다

by 먼소리뚜버기

‘왜?’를 묻는 습관은 사람과 사물, 일뿐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와 제도, 그리고 노년의 삶을 바라볼 때도 따라붙었다. 특히 2006년, 미국 크레스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간판은 그 질문의 방향을 ‘돌봄’으로 또렷하게 돌렸다.

썬라이즈(Sunrise), 영어로 된 큰 나무 간판을 보는 순간, ‘해돋이, 일출’이라는 일상의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멋있어 보였다.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이 처음이라 커다란 영어 간판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은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영어 간판이 즐비하지만, 미국으로 떠나던 2006년 내 고향 무주에서는 흔치 않았다.

당시 내가 사는 임대주택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주택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간판이었다. 큰 글씨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Senior Living’이라고 씌어 있었다. 내가 사는 임대주택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 건물이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크레스킬(Cresskill)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면서 ‘Sunrise Senior Living’이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저 근사한 건물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지가 궁금해지면서, 노인 거주와 돌봄에 관한 관심이 시작됐다.

그 당시에도 관련 정보를 찾아보긴 했을 테지만 기억이 흐릿하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다시 누리집을 찾아보았다. 시니어 라이프를 위한 비전을 대략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81년, 폴과 테리 클라센 부부는 버지니아주 오크턴(Oakton)에 첫 번째 썬라이즈 커뮤니티를 열었다. 이들이 세운 비전은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이었다.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 병원 같은 공간이 아니라, 삶의 질을 중심에 둔 ‘집 같은 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노인 요양 시설은 대체로 차갑고 획일적인 분위기였고, 젊은 부부였던 이들은 그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다.

설립자 부부가 떠올린 대안은 네덜란드의 따뜻하고 가정적인 노인 돌봄 모델이었다. 테리는 15세였을 때, 말기 암을 앓던 어머니를 비인격적인 요양원에 맡기는 대신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돌보려고 애쓴 경험이 있었다.

반면 폴은 어린 시절을 네덜란드에서 보내며, ‘verzorgingstehuizen(페어조르킹스테이하우젠)’이라 불리는 노인 요양시설을 보며 자랐다. 직역하면 “돌봄이 제공되는 집” 정도 되는 이 시설은, 노인들이 비교적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의 생활형 요양 주택이다.

그곳에서 폴의 조부모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자립적인 삶을 이어갔다. 동시에,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안락함과 안전망 속에 살았다. 폴과 테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며, 존엄을 지켜주는 새로운 노인 돌봄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Sunrise Senior Living은 그 비전이 현실이 된 결과물이었다.

썬라이즈와 같은 시설이 보편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시작된 작은 호기심은 시간이 지나며 돌봄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지역사회 통합 돌봄’ 정책 추진을 보며, 삶의 질과 인간다운 돌봄 환경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졌다. 이 책은 바로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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