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닿을 수 없는 곳에 길을 내다

나는 접근성에 집중하고 싶다

by 먼소리뚜버기

글을 시작하며 나는 물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보건과 복지의 수많은 제도가 만들어지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삶에는 여전히 닿지 않는 빈틈이 있었다. 나는 그 빈틈의 이름을 ‘접근성(Accessibility)’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지도 위의 거리가 아닌 ‘사람의 거리’를 재고 싶었다.

우리가 고민했던 ‘식품 접근성’은 단순히 마트를 짓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멈춰버린 트럭에 다시 시동을 걸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부엌까지 신선한 식재료를 실어 나르는 정성이었다. ‘이동 접근성’ 또한 도로를 넓히는 물리적 확장을 넘어선다. 10리 길을 걷기엔 이미 약해진 무릎을 위해, 100원 택시를 대문 앞까지 보내고 가파른 언덕길에 작은 벤치를 놓아드리는 세심함이 곧 이동권이었다. ‘주거 접근성’은 낙상 방지용 손잡이를 설치하는 것을 넘어, 낡은 문틈으로 새어드는 외풍을 막아 꽁꽁 언 손을 녹여주는 온기여야 했다.

‘정보접근성’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어르신 손에 최신 스마트폰을 쥐여드리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깨알 같은 글씨와 외계어 같은 행정 용어를 어르신의 눈높이로 번역해 드리는 일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까막눈’이 된 것 같은 답답함을 해소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창을 활짝 열어드리는 것이 진정한 정보의 평등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접근성’은 키오스크라는 차가운 기계 앞에서 발길을 돌리던 어르신에게, “제가 도와드릴게요”라며 안테나를 맞춰주던 따뜻한 손길이자 다정한 관심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접근성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문턱을 깎는 공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턱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섬세함이었다. 행정의 언어가 ‘지원 대상’이나 ‘수급 자격’을 따질 때, 우리는 “밥은 드셨나?”, “어디 아픈 데는 없나?”라는 사람의 언어로 먼저 다가가야 했다.

나는 시골 공무원이다. 나의 일은 화려한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의 작은 턱을 낮추는 일이다. 지표상의 수치를 올리는 것보다, 오늘 하루 주민이 느꼈을 고립감의 수치를 낮추는 것에 내 존재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접근성’에 집착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소한 1cm의 문턱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대한 장벽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장벽을 허물어 밥이 닿고, 사람이 닿고, 정보가 흐르고, 마침내 삶의 존엄이 닿게 하는 것. 그것은 내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집중’이라고 믿는다.

책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만, 현장의 고민은 다시 쉼표로 이어진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걷고 싶다. 숫자가 놓친 사람을 찾아서, 제도가 닿지 못한 마음을 찾아서. 그렇게 ‘닿을 수 없는 곳에 길을 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여전히 접근성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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