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사유한 만큼 앓고 있는 것인가요

by 먼소리뚜버기

세상은 때로 우리에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유연함을 강요합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자기만의 생각이 확실하고, 마음속에 단단한 기준 하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들 가슴속에 들어앉은 '기준'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고집이 아닙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그러했듯, 숱한 밤을 고뇌의 바다에 쏟아붓고 나서야 비로소 얻어낸 귀한 수확물입니다. 살아온 세월의 길고 짧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내밀한 삶의 경우의 수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정직한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이렇게 자기 기준이 선명한 분들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자주 마음을 앓습니다. 스스로 세운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기에,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무질서한 상황이나 무너진 상식을 차마 모른 척 넘기지 못합니다. 남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웃어넘길 때, 이들은 기준에 닿지 못한 현실 앞에서 홀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을 끓입니다.

그 고통은 '삶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 지불하는 정성'일지도 모릅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흐려지면 마음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삶의 고유한 빛깔은 사라지고 맙니다. 스스로를 깎아내서라도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으려 애쓰는 그들의 고단한 공정이, 사실은 우리 사회의 품격과 상식을 조용히 지탱해 주는 든든한 뿌리가 되어줍니다.

오늘 밤, 스스로의 기준 때문에 마음이 시렸던 당신에게 가만히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당신의 기준이 당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그 기준이 있기에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토록 단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다정한 이정표가 되어주느라 고단했던 당신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고귀합니다.

오늘 하루도 정말 애쓰셨습니다. 당신의 그 곧은 마음이 내일은 조금 덜 아프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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