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과 경리단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함의 공존

by 나세진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최근 아주 인상적인 곳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바로 '해방촌'입니다! 이름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곳이죠. 우리나라의 해방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럼 저와 함께 여행을 해보겠습니다.

SE-3a393a5e-25a0-11f1-9e74-c5c7bcd18491.jpg?type=w1 해방촌을 올라가는 108계단 경사형 승강기

해방촌을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서 저는 108계단을 올라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계단이 너무 많아서 경사형 승강기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신기했던 점은 실제로 계단을 오르면서 수를 세어보니, 딱 108개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 승강기도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만 멈추는 게 아니라, 올라가는 과정에서 멈추게 할 수 있는 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걸어 올라가니 운동이 많이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체를 단련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저 계단을 걸어 올라가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108이란 수가 우리에겐 참 익숙한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108가지 번뇌가 있다고 합니다. 6근(눈, 귀, 코, 혀, 몸, 의식)에 각기 괴롭고, 좋고, 괴롭지도, 좋지도 않은 반응이 있어 18가지가 되고, 여기에 탐과 무탐이 있어서 36가지가 됩니다. 이를 과거/현재/미래와 조합하면 108가지가 됩니다. 그래서 절에 가면 108배를 한다고 하죠. 절을 하면서 번뇌를 하나씩 내려 놓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 열심히 읽었던 《수호지》에서 108명의 호걸들이 등장합니다. 이 호걸들은 깨끗한 성인이 아니라, 욕망, 분노, 억울함, 폭력성을 가진 인물들도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초기에 나오는 노지심은 굉장히 포악한 승려이고, 표범머리 임충은 억울하게 모함을 받고 죄인이 됩니다. 그리고 도둑, 상인, 어부, 군인 등 다양한 계층이 섞여 있습니다. 결국 《수호지》는 도덕교과서가 아니라, "문제 많은 인간 군상이 모여 만든 또다른 정의"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 있는 작품이니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2406.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2506.jpg?type=w1
승강기를 내리자마자 보이는 안내(좌) / 승강기 4층의 모습(우)

원래는 경성호국신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식민지의 폭력 속에서 강제로 동원되고 수탈 당했던 우리 조상들의 넋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해외에서 귀환하거나 월남한 동포들이 빠르게 정착하면서 '해방촌'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지명의 유래는 언제 들어도 재밌는 것 같습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2912.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3701.jpg?type=w1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카페들

올라오자마자 카페가 보입니다. 108계단을 힘겹게 올라서였을까요. 저는 생각이 없었는데, 승강기를 탄 막내 아들이 힘들었는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젤라또를 파는 카페였고, 또 하나는 츄러스를 파는 가게처럼 보입니다. 젤라또와 츄러스, 둘 다 우리에게 익숙한 간식이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와 방식에서 나왔습니다.

젤라또는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이고, 츄러스는 에스파냐의 간식입니다.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모두 축구를 잘하기로 유명합니다만, 축구의 스타일은 다릅니다. 이처럼, 부드럽고 쫀득한 냉동된 간식과 바삭하고 촉촉한 튀김 스타일의 간식도 마찬가지로 다릅니다. 그러나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츄러스를 들고 함께 먹는다면 맛이 잘 조화될 것 같기도 합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3758.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4145.jpg?type=w1
SE-3a4dd3d7-25a0-11f1-9e74-c3807f1c7a76.jpg?type=w1


해방촌은 경사가 급한 길이 많습니다. 걸어오르거나 내려오기 쉽지 않습니다. 과도한 음주 후에는 절대 걸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길입니다. 해방촌의 오르막길은, 마치 천로역정 속 순례자의 길처럼, 숨을 몰아쉬게 하면서도 끝내 발걸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듭니다. 하지만 오르막길은 동시에 내려올 때는 내리막길이 됩니다. 같은 모습이지만 정반대의 성격으로 불리는 길입니다.

길이 가파르면 내면에서 고통과 감정 간의 갈등을 느끼게 되고, 길이 평탄하면 안도와 휴식을 느끼게 됩니다. 해방촌의 길은 짐을 짊어지고 뚜벅뚜벅 걷는, 고된 인생길을 연상케 합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4042.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54500.jpg?type=w1
여행길 안내도(좌)

안내도를 보고 신흥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에 신흥시장 안에 있는 시장횟집에서 맛있게 알탕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흥시장 근처 오거리에 보이는 주민센터는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시장의 모습은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핫'한 장소로 탈바꿈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맥주와 커피, 여러 음식을 오밀조밀 모여 즐기고 있었습니다.

SE-88d6852e-af76-432b-897b-62db13c4b95a.jpg?type=w1 해방교회

신흥시장을 구경하고 나오니 해방교회가 보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올렸던 글을 기억하시나요? 1점 투시가 떠오르는 구도입니다. 상당히 커보이는 교회가 소실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유서 깊은 장소인 듯 보였습니다. 역시나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연혁을 찾아보니, 1947년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62042.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61944.jpg?type=w1
SE-3a5d3d2f-25a0-11f1-9e74-99f45fc7efae.jpg?type=w1
해방촌 성당

뒤이어 해방촌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해방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제겐 이곳라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건물이 예쁜 것도 아닌데, 왜 저는 이 장소가 기억에 남을까요?

그건 바로 성당 주차장에서 고무공으로 축구를 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꼬마였을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나라가 풍족하게 발전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IMF 경제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죠.

밥을 굶고 살지 않았지만 치킨이나 짜장면, 탕수육을 먹는 날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고, 맥도날드 햄버거는 생일날에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은 간식을 주는 곳으로 모이게 마련인데,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은 그 지역에 있는 종교시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놓고 동네 아이들과 차가 돌아다니는 길목에서 축구나 야구를 밤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 즐거웠던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성당의 내부는 인기척 없이 조용했고, 오로지 중후한 음악만이 실내에 울려 퍼졌습니다. 가톨릭의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81558.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80751.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84308.jpg?type=w1
세계 식료품점(좌) / Bonny's Pub 피자 가게(우)

성당을 구경하고, 다시 108계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문화 거리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피자를 파는 가게인 Bonny's 피자 펍에 들러서 피자 한 판을 시켰습니다. 다문화 거리답게 미국인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주문해서였을까요, 페퍼로니 피자가 맛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피자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93219.jpg?type=w1
900%EF%BC%BFIMG%EF%BC%BF20260321%EF%BC%BF193300.jpg?type=w1
경리단길 표지판(좌) / 세계 각국의 인사말이 붙어 있는 벽(우)

해방촌을 구경하고 용산구청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경리단길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굉장히 '핫'한 곳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썰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우선 경리단길이라고 불린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경리'라는 단어 많이 들어보셨죠? 회사 등에서 금전 출납, 회계 관련 업무 등을 담당하는 분을 경리라고 부릅니다. 현 국군재정관리단 건물이 예전에 육군의 제정과 회계 업무를 담당하던 육군중앙경리단이었습니다. 육군중앙경리단의 마지막 세 글자를 따서 경리단길이라고 불렸습니다.

제가 듣기로 이곳은 원래 임대료가 저렴하고, 중심 상권에서 비껴난 곳이어서 개성 있는 카페, 작은 식당, 특색 있는 상점들이 들어오면서 특유의 감성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숨겨진 이색 거리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SNS, 방송 등으로 방문객이 폭증하고, 상권이 급성장하게 됩니다. 유명해지면 거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입니다. 이는 도시 재생이나 개발 과정에서 중산층 이상의 인구가 유입되면서 기존 저소득층 주민이 주거비 상승 등으로 밀려나는 사회경제적 현상입니다. 임대료가 급등하고, 건물주가 바뀌고 상업화가 됩니다. 원래 있던 작은 가게들도 퇴출되다시피 합니다.

결국 개성 있는 가게가 사라지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점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핫플로서의 매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여기에 성수동이나 한남동 같은 주목할만한 상권이 등장하고, 주차 문제까지 더해져 점점 사람들의 발길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송리단길, 해리단길 등 "~리단길"의 시초가 사실은 경리단길이었음에도, 작아진 상권을 보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SE-3a6860c5-25a0-11f1-9e74-e90ebb3b5c52.jpg?type=w1 경리단길을 밝히는 바이킹 배 모양의 초승달

경리단길 위에는 사오정의 무기인 월아삽처럼 휘어진 초승달이 떠 있었습니다. 번성했던 흔적을 조용히 쓸어 담는 듯한 그 곡선 아래에서, 한때 ‘핫플레이스’였던 시간도 함께 저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길이 그렇듯, 이 거리 역시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작가의 이전글[독서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