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당돌함이 돋보이는 상상의 세계(4)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오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를 마무리해 보려 합니다.
※ 스포일러 안내
- 제 글에서는 작품의 핵심 장면과 결말을 함께 다룹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작품을 읽고 돌아오시길 권합니다.^^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가장 악역 같은 등장인물은 바로 하트 여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왕은 걸핏하면 "목을 베라"라고 말합니다. 앨리스가 아주 이상한 다과회를 끝내고 정원 입구로 갔을 때, 입구에 핀 하얀 장미를 정원사(트럼프 카드 2, 5, 7 / 책에서는 각각 투, 파이브, 세븐이라고 부릅니다.) 세 명이 부지런히 붉게 칠하고 있었습니다. 앨리스가 이유를 묻자 투(two)가 여왕이 오기 전에 빨간색 장미 나무를 심어야 목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페인트색을 실수로 잘못 칠한다고 해서 목이 잘리는 형벌'을 내리는 사회 또는 권위적 폭력을 풍자한 것이라 느꼈습니다. 정원사들과 앨리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하트 여왕이 등장했습니다. 여왕이 앨리스에게 세 정원사를 가리키며 이자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앨리스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걸요."라며 당돌하게 대답하자 여왕은 앨리스의 목을 치라고 명했습니다.
모두 여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격식을 갖추고 있을 때 어린 앨리스만이 자신의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이의 입을 통해 부당한 권위의 허를 찌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왕은 앨리스 뿐만 아니라 체셔 고양이에게도, 크로케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에게도 목을 치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어떤 문제든,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여왕의 문제해결 방식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목을 치는 것이죠. 액면 그대로만 보면, 상당히 무서운 표현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표현 조차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도록 만듭니다. 전반적인 흐름과 맥락, 행위와 언어 속에서 '공포'를 무력화시키는 작가의 뛰어남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저항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에 나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재판 장면이죠. 누가 파이를 훔쳤는지 알아보는 재판입니다. 결과에 큰 영향을 주는 배심원들과,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 모두 희화화가 됩니다. 재판 시작 전에 배심원단이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 가발 위에 왕관을 쓴 재판관의 모습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모습 뿐 아니라 재판의 진행 과정도 실 없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앨리스가 마지막에 배심원의 평결보다 선고를 먼저하자는 여왕의 말에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합니다. 여전히 여왕은 목을 베라는 명령으로 이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때 앨리스가 한 마디를 하자, 이상한 세계를 벗어납니다.
"그런다고 누가 신경이나 쓸까요? 당신들은 그냥 카드 묶음일 뿐인데요."
저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 분들 덕에 지금의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폭력에 순종하고 따르며 불의한 체제가 공고히 유지되도록 하는 데 일조한다면, 우리 모두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회색빛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개성도 없고, 자유도 없는 세상 말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은 왕이 아니라고 종종 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저를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그러나 오직 교사의 주도 아래서만 돌아가는 학급은 효율적이고 완벽해 보일 수는 있으나, 그 안에서 아이들은 점점 질문을 잃어 갑니다. 질문하지 않는 교실은 조용하고 체제를 갖췄다는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살아있는 교실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앨리스가 하트 여왕 앞에서 보인 태도는 무례함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누군가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지 않을 때 비로소 자랍니다.
교실은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공간이기 이전에, “그건 이상하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남기보다, 때로는 나의 말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교육이란, 또 하나의 하트 여왕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은 앨리스를 길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S. 이 책을 읽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이 책에 관한 글을 다 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정리를 하면서 저도 앨리스와 함께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이 글은, 사실은 어른들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며 느낀 점을 모두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앨리스의 엉뚱함이야말로 사고의 확장이고, 배움은 혼란 속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로서 뭔가 위대한 교육 고전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