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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뜨 Sep 28. 2021

필름 카메라만 들고 떠나는
날것의 여행 두 번째

에노덴의 극락사역(江ノ電の極楽寺駅)

갑자기 핸드폰 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사진도 필름 카메라도 찍고 싶었다. 거리를 헤매는 순간도 보정할 수 없고, 맛있게 나온 음식을 더 맛있어 보이게 보정할 수 없는, 날것의 여행을 하고 싶었다.  


오늘은 일주일 전 처음으로 핸드폰 없이 필름 카메라만 달랑 들고 츠지도 해안공원을 갔을 때를 떠올리며 준비를 단단히 했다. 


시계. 그리고 돗자리. 

좋아. 준비 완료.


내가 계획한 날것의 여행은 본디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정보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가는 여행이 컨셉이지만, 전날 밤이 되면 다음날의 여행이 걱정되어 나도 모르게 검색해버리고 말았다.


해서 이번에 가기로 결정한 곳은 '극락사역'으로, 가마쿠라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에노덴을 타고 가야만 갈 수 있는 역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남들 다 가는 곳은 가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생판 모르는 길거리를 헤매고 싶진 않아, 역 바로 옆에 절이 있다는 걸 인터넷으로 미리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음이다.



분명 오늘 하루는 여유로왔을터인데. 여유를 너무 즐겼더니 오전이 다 사라졌고, 오후 느지막이 에노덴을 타고 극락사역을 향했다. 


일본 전철은 복잡하기로 유명하지만, 다행히 에노덴은 단순하여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다지 불안하지 않았다. 대신 극락사역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작은 걱정만 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편도 310엔. 전철 타는데 3000원이 넘는 돈을 낸다고 생각하면 배가 아프지만, 관광열차 탔다고 생각하니 아픈 배가 나았다. 


전철은 일본의 소도시 전경을 면면히 보여주다 이내 바다로 향했다. 에노덴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핸드폰을 찾게 만들었다.


'이건 사진 찍어놔야 해.'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고자 핸드폰을 가방에서 찾고 있었다. 핸드폰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가방에서 손을 뺐다. 


일본의 소도시를 지나, 바다를 지나, 산으로 향하던 에노덴은 이내 극락사역에 멈췄다. 


극락사역은 매우 작은 역이었고, 극락사 또한 작았다.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몇 없었고 길거리를 헤매다 보면 한 두 명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에게 길을 제시하고 가는, 그런 소박한 관광지였다.

 

  極楽寺極楽寺極極楽寺楽寺極楽寺極楽寺

하지만 신기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몸을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입구였다. 속세의 지위, 명예는 다 내려놓고 모두 동등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란 의미로 일본의 다실이 이런 구조라는 건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그런데 절도 그렇다니. 신기했다.


 

지위도, 명예도 그리고 돈도 없지만 그래도 한껏 낮춰 들어가 보니 있을 건 다 있지만, 없다면 또 없었다.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고, 시든 꽃도 있고, 우람한 나무도 있었다. 그렇게 에노덴 타고 40분 걸려 온 극락사는 5분도 안되어 탐방이 끝났다. 


뭐하지. 이제.



극락사역은 역도 작고, 절도 작고, 마을도 작았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열차도 보고.



산 밑 터널도 보고.


그렇게 방황하며 역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니, 어디선가 여행객 두 분이 나타나 나는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가길래 따라가 보았다. 



숲의 터널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니.



바다가 보였고.



성취원(成就院)의 귀여운 불상도 발견했다. 



그렇게 별 소득 없는 방황을 마치고 역으로 다시 돌아가 에노덴 사진을 찍으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전철 이동시간 포함 2시간의 짧은 여행. 그중 에노덴 타며 흘려보낸 시간이 1시간 30분. 

이번엔 그런 여행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실패였다. 감동도 없고, 감탄도 없고, 소박함에서 더 소박함으로 끝난 여행이었다. 오후 늦게 여행을 시작해 사진도 점점 어둡게 나와, 사진도 여행도 블랙아웃으로 끝나버렸다. 


저번 여행의 필수라 생각한 시계와 돗자리는 오히려 애물단지였다. 시계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이 짧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돗자리는 챙겨가지 않았다면 쉴만한 곳이 없음에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 나만의 보물을 찾고 싶었고, 핸드폰으로 미리 정보를 찾지 않더라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멋진 무언가가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었다. 남들이 안 간 곳은 이유가 있었고, 남들이 찾지 못하는 감동을 찾아낼 감성이 나에겐 없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두 시간 만에 핸드폰을 집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핸드폰 무거워.'


핸드폰이란 게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나. 항상 손에 들고 다니던 그것이 유달리 낯설어지는 순간이었다.

핸드폰이 낯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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