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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Jan 30. 2021

나는 유영하는 우주 왕먼지.

21년 01월 30일

  난 참 성가신 사람이다.


  오랜 시간 동안 취업을 바라 왔다. 꼭 하고 싶은 일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회사에 취업까지 했다. 하지만 고기뷔페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듯이, 내 마음은 차디차게 식어 버렸다. 고기 한판만에 다 물려버렸다. 고기 뷔페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먹겠다는 나의 초심은 어디갔는지. 차라리 돈 좀 더 내더라도 좋은 고깃집 갈걸 그런 생각도 든다.


  요즘 내 맘이 딱 그렇다. 취준 시절, 일만 시켜준다면 자발적 노예가 되겠다 다짐했었다. 쿠팡같이 육체노동이 아니라 사무실에 앉아서 키보드만 뚜둘길수 있다면 최저임금도 야근도 불사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육체노동이든 키보드를 뚜둘기든 뭐든 하기 싫다. 다 하기 싫다. 처음의 그 열정은 딱 3일 갔다. 일이 손에 1도 안 잡힌다.


  매일매일 11시 넘어 일어나던 백수였던 내가 꿈만 같다. 이제 내 꿈이 백수다.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곤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집 청소하던 내가 그립다. 그땐 일하고 싶어서 마음고생 꽤나 했었는데, 싹 다 까먹었다. 이렇게 무지하고 멍청한 무지렁이, 뭘 해도 만족 못하는 성가신 놈이 바로 나다. 빨리 은퇴나 하고 싶다.


_


  이번에 취업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도 더 무쓸모 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는 우주왕먼지다. 매번 출근을 해서 퇴근할 때까지 무능하다는 사실만 배운다. 언제 그 언제 1인분은커녕 어린이 세트라도 하는 날이 올지 가늠이 안된다. 지금 당장 일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닌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는 게 없다.


  매일 일을 배우지만 새롭고 또 새롭다. 사람 관계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 나의 원래 업무까지 하나하나 전부 어렵고 새롭다. 특히나 나랑 대표님 그리고 인턴 2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기형적인 우리 회사의 상황이 문제를 가중시킨다. 나도 생애 첫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할 줄 아는 것은커녕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도리어 인턴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인데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마음은 조급하니, 매일같이 새로운 삽질을 하고 있다. 매일 어떤 일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다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매일매일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눈치만 본다. 자신만만하게 뭐든 주는 대로 다 해버리겠다는 나의 취준생적 야망, 자신감은 다 쪼그라든 지 오래다. 이미 쪼글쪼글 쭈구리가 되었다. 그냥 누가 시켜주는 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전지전능한 알고리즘, 쿠팡 물류센터 PDA가 시켜주던 일이 그립다.


  그래도 언젠가 일을 하다 보면 어딘가 도달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매일 일을 배우니까 그래고 어제보단 내일 내가 좀 더 쓸만한 사람이 되어가지 않을까 싶다. 좀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우주왕먼지지만 그래도 야무지게 뭉쳐진 먼지가 되고 싶다.


_


  나는 서울 혁신 파크에 입주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다들 이름만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사회적 어쩌고, 소셜 어쩌고, 좋은 일 어쩌고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런 회사들은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대책 없이 착한 사람들이 회사의 멋진 비전과 소셜 임팩트를 위해서 끊임없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세상에 쓸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에 반해 임금은 박하다.


  그리고 은근히 파별도 심하다. 버는 돈의 대부분이 대단한 어떤 회사에서 나오는 지원금이거나 공모전에서 타오는 돈이 많아서 그런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렇고 그런 업계 소문을 빠삭하게 듣고 있다. 착한 일은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도 다 돈이다. 그래서 어딘가 돈을 주는 사람들과 친해야 되고 비슷비슷한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단체끼리는 서로가 라이벌인 거다. 생각보다 그리 착한 동네는 아니다.


  내가 이 쪽에서 일하는 건 다 명예 때문이다. "짧은 인생, 돈보다는 착한 일 한다는 명분으로 살겠다"는 멍청하지만 옳은 결정을 내린 탓에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조금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회사에서는 사회에서든 이 분야에서는 어디서든 말이다.


  그래서 좀 더 쓸만한 우주 왕먼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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