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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박 Jul 05. 2022

와이프가 갑자기 싱가포르에 가자고 합니다

우리의 해외 이민 이야기

수리를 마친 신혼집

때는 바야흐로 2020년. 우리는 다른 '보통 사람'들과 다를 나위 없이 치열한 생존을 하며 직장을 다니는 연인이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결혼을 약속하고, 둘이 평생직장 생활하면서 번 돈으로 어렵사리 20년이 넘은 구닥다리 신혼집을 마련하였다. 경사로 45도는 되어 보이는 그 언덕바지 집을 꾸미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장 3개월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 우리의 '그 집'은 너무나도 소중하였기에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졌고, 인기 없는 와이프의 블로그에 소개했더니 또 갑자기 네 x 버 메인에 소개되었다. 하루 5만 명 이상의 접속자가 발생할 정도로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애드 포스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었다. 우리의 2020년은 다소 복잡하였지만 낭만적이고 보람찬 한 해가 되었다.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사다난했던 20년을 뒤로한 채, 21년 우린 COVID-19와 함께 또 기록적인 한파를 동반한 바로 그때 결혼식을 올렸다. 역시나 쉽지 않은 한 해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달달한 신혼생활을 무탈하게 이어갈 어느 여름 즈음.. 와이프의 휴대폰에 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때 분명 어떤 집안일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래서인지 더 그 전화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고, 그냥 친구 전화나 장모님의 전화겠거니 하고 무덤덤하였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와이프의 첫마디엔 다소 생기가 떨어지는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말로 얼버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빠.. 우리.. 싱.. 가.. 포르.. 갈까?" 


이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 것인가?? 나의 입술은 바짝 말라있었고, 알 수 없는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10초간 침묵을 이어가다 난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갑자기 긴 했다. 침묵을 이어갔던 시간치곤 조금은 짧고, 무성의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말을 듣는다면 갑자기라는 말이 왜 안 나오겠는가? 그러자 와이프는 통화 내용의 상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그 내용인즉슨 현재 다니던 외국계 회사의 싱가포르 지사 쪽으로의 취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와이프: "부모님께 알려야 할까?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나: "아니.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그럼 면접은 한번 보는 게 어때? 좋은 기회이긴 한 것 같네."


역시 좋은 제안은 뿌리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비대면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결혼식과 함께했던 COVID-19이라는 친구와 또 마주하게 된 우린 싱가포르에서의 만족할 만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외국 넘버의 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린 또 비슷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평소와 조금은 다른 것 같은 와이프의 목소리가 넌지시 들려왔다. 그 촉감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는지 아니나 다를까 다른 싱가포르 회사의 면접 제안이었고, 우린 첫 번째 상황과 유사했던 것이라 그런지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일단 해볼까라는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속한 면접과 합격자 통보를 받았다. 첫 번째 회사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아무튼 그제야 우린 비로소 무엇인가 해냈다는 어느 정도 속 시원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실감했고, 또 서둘러 준비를 해야 했다. 3개월 후 바로 출근하길 원했던 합격한 회사의 결정 때문이었다. 물론 예상은 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에 우리는 3개월 동안 정말 바빴다.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고, 또 현지에서 생활할 집을 구해야 했고(사실 싱가포르 현지의 회사는 국내 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짐을 아야 했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팔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을 3개월 안에 해결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지만 불굴의 의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우린 그렇게 싱가포르로 떠났다.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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