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를 마친 신혼집 때는 바야흐로 2020년. 우리는 다른 '보통 사람'들과 다를 나위 없이 치열한 생존을 하며 직장을 다니는 연인이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결혼을 약속하고, 둘이 평생직장 생활하면서 번 돈으로 어렵사리 20년이 넘은 구닥다리 신혼집을 마련하였다. 경사로 45도는 되어 보이는 그 언덕바지 집을 꾸미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장 3개월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 우리의 '그 집'은 너무나도 소중하였기에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졌고, 인기 없는 와이프의 블로그에 소개했더니 또 갑자기 네 x 버 메인에 소개되었다. 하루 5만 명 이상의 접속자가 발생할 정도로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애드 포스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었다. 우리의 2020년은 다소 복잡하였지만 낭만적이고 보람찬 한 해가 되었다.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사다난했던 20년을 뒤로한 채, 21년 우린 COVID-19와 함께 또 기록적인 한파를 동반한 바로 그때 결혼식을 올렸다. 역시나 쉽지 않은 한 해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달달한 신혼생활을 무탈하게 이어갈 어느 여름 즈음.. 와이프의 휴대폰에 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때 분명 어떤 집안일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래서인지 더 그 전화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고, 그냥 친구 전화나 장모님의 전화겠거니 하고 무덤덤하였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와이프의 첫마디엔 다소 생기가 떨어지는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말로 얼버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빠.. 우리.. 싱.. 가.. 포르.. 갈까?"
이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 것인가?? 나의 입술은 바짝 말라있었고, 알 수 없는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10초간 침묵을 이어가다 난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갑자기 긴 했다. 침묵을 이어갔던 시간치곤 조금은 짧고, 무성의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말을 듣는다면 갑자기라는 말이 왜 안 나오겠는가? 그러자 와이프는 통화 내용의 상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그 내용인즉슨 현재 다니던 외국계 회사의 싱가포르 지사 쪽으로의 취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와이프: "부모님께 알려야 할까?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나: "아니.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그럼 면접은 한번 보는 게 어때? 좋은 기회이긴 한 것 같네."
역시 좋은 제안은 뿌리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비대면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결혼식과 함께했던 COVID-19이라는 친구와 또 마주하게 된 우린 싱가포르에서의 만족할 만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외국 넘버의 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린 또 비슷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평소와 조금은 다른 것 같은 와이프의 목소리가 넌지시 들려왔다. 그 촉감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는지 아니나 다를까 다른 싱가포르 회사의 면접 제안이었고, 우린 첫 번째 상황과 유사했던 것이라 그런지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일단 해볼까라는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속한 면접과 합격자 통보를 받았다. 첫 번째 회사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아무튼 그제야 우린 비로소 무엇인가 해냈다는 어느 정도 속 시원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실감했고, 또 서둘러 준비를 해야 했다. 3개월 후 바로 출근하길 원했던 합격한 회사의 결정 때문이었다. 물론 예상은 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에 우리는 3개월 동안 정말 바빴다.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고, 또 현지에서 생활할 집을 구해야 했고(사실 싱가포르 현지의 회사는 국내 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짐을 싸아야 했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팔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을 3개월 안에 해결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지만 불굴의 의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우린 그렇게 싱가포르로 떠났다.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