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사는 게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학창 시절 집에서 보일러를 잘 못 켰습니다. 절약을 위해서요. 저는 면역이 약했는데 일 년의 3/4를 감기에 걸려 코흘리개로 지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심하게 앓아누워 응급병원을 이삼일 가 있고요. 집도 학교도 너무 추워서 겨울이 미웠어요. 아침에 일어나 이불 밖으로 몸을 내미는 것도, 보일러를 온수 모드로 켜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이 나올 천만년 같은 삼사 분을 기다리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꼭 어른이 되면 온수가 콸콸 나오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절약이고 뭐고 그냥 춥다 싶으면 제멋대로 틉니다. 가스비를 제가 내거든요.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찌개용 고기를 한 숟가락에 한 개씩 먹었다고 혼이 났었습니다. 지금은 고기를 추가해서 먹을 수도 있어요. 삼겹살을 먹으면 상추 하나에 고기를 두 점씩 얹어보기도 하고요.
아침에 눈을 뜨고 사는 게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저는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타입이에요. 그렇다고 인생을 탕진할 정도는 아니고 종종 소박한 사치를 합니다. 현재를 희생해 올 너무 먼 미래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체력이 약하고 계산에 느리고 피곤하면 눕고 졸리면 자고 울고 싶을 때 슬픈 영화를 틀어 양껏 보아요.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편입니다. 그러다 스스로 정한 할 때 일을 모아서 해요. 일복은 타고나서 다행입니다. 지금처럼 산다면 지금처럼 살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가 그리 불만족스럽진 않아요. 고등학생일 때에는 어른이 되면 더 먼 미래를 준비하고, 부모님처럼 절약하고, 작은 것 하나도 아끼도록 사람이 바뀌는 줄 알았습니다만.
공부를 제법 했습니다. 그림도 글도 나름 잘 써서 대회를 많이 나갔어요. 수상을 하면 받는 문화상품권을 모아 용돈으로 썼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블로그를 통해 그림 외주를 받았어요. 첫 외주는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였습니다. 덕분에 용돈을 받지 않고도 그 나이대에서는 꽤 풍족하게 지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학교생활에 신경을 많이 써 주셨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독립하고 싶어서 혼자 입시요강을 읽고 자소서를 쓰며 대입을 준비했고, 경희대에 입학했습니다. 혼자 한 대입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크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니 사막에 뚝 떨어져도 살아남을 애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어요. 수능을 막 마치고 혼자 사막이 아닌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하는 건 좀 어려웠지만요.
Y는 서울에 있는 미대를 나와서 그림을 그릴 거라고, 폭력적인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내신이 좋지 않았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수능을 밀려 썼고 재수는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말에 아르바이트하며 꾸역꾸역 준비한 재수는 더 좋지 않은 점수가 나왔고요. 펑펑 울면서 나는 왜 이럴까 내 가족은 왜 이럴까 하고 울다가도 꿋꿋하게 자기 일을 찾아서 가길래 저는 Y는 잘 되어야만 한다고, 꼭 잘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요.
B와는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이인데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울의 유수 대학을 나왔고 대학을 다닐 적에도 각자 일을 하며 알게 되었고,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일을 끊임없이 해 오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서로가 멋있다고 응원한다고 오래 해 왔었는데요. 가끔은 업체의 형태로 가격 경쟁을 파괴하며 나타나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본업 하나만을 가지고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다가,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한참을 막막하다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잘 될 거라는, 그러나 일정한 근거는 없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 시대는, 시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대학에 와서 등록금을 잘 벌어 냈습니다. 월세와 생활비도 열심히 벌어 썼어요. 그러니까 수업을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로 맞춰 놓고는 오후 세 시부터 밤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조금 더 시급이 높은 알바를 골라 오후 다섯 시부터 열한 시로 바꾸었어요. 그러면서 한 달에 대외활동을 세 개씩은 했습니다. 대외활동을 하면 월 활동비로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를 주는데, 세 개 정도를 하면 이 비용이 적지 않았거든요. 그 와중에 외주를 받고, 개인 작업을 하고, 방학 때에는 또 다른 온갖 아르바이트를 거치고, 인턴을 하고, 힘들면 휴학도 하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서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엔 맨몸으로 서울에 올라와 보증금도 없어 월 35만 원에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 살던 제가 학자금 빚을 다 갚고 보증금을 모아 그래도 사람 살 정도의 원룸을 구해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고 주변에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1.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2. 감당하거나 갚아야 할 채무가 없고 3. 하고 싶은 일에서 기준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사는 것에 약간 회의가 듭니다.
스물한 살에는 선을 봐서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학생 때 나이가 띠동갑 차이가 나는 부유한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결혼해서 졸업하고 바로 아이를 낳고 그 후에 아이가 자랐을 서른부터 하고 싶은 것을 지원받으며 편히 살아보라고요. 스물네 살에는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것은 기술이라 배우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정말로 돈을 벌고 가치 있는 일은 개발이나 경영이나 기획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어른들은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거냐고, 취미는 취미로 하고 월급 나오는 일을 해야 한다며 취직은 언제 할 거냐고 물으셨는데요. 이제는 지금이 결혼 적령기이니 누군가와 사귄다면 일이 년 만나고 결혼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신중하게 사람을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월세를 내고, 할부금을 갚고, 통신비나 따박따박 나가는 것들을 내다보면 먼 미래는커녕 다음 달부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달에는 고작 세 달 쓴 휴대폰을 교환해준다는 말에 넘어가 사기를 당했지 뭐예요. 멍청하게. 혼자 일하고 혼자 벌이를 채우다 보니 중소기업청년대출이라던가 신용 등급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세상 같습니다. 현실은 너무 현실입니다. 그래도 넌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잖아, 라는 말이 가끔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저는 미래가 된다고 해서 삶이 그렇게 확 나아질거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요. 요즘은 프리랜서는 월 500부터고 그 이하라면 프리랜서가 아니라 그냥 프리라고도 하더라고요. 이 업계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어 제 위치도 오락가락하는데 곧 찾아올 긴 비수기가 걱정은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먹고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제대로 살아온 걸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수능을 마치자마자 혼자 방을 구하러 서울에 올라왔던 게 생각나요. 창문이 있거나 샤워부스가 딸려 있으면 월 10만 원이 비싸져서 창문도 없고 발끝이 벽에 닿는 고시원의 복도 안쪽 작은 방에서 살았어요. 기본은 35만 원인데 여성 전용층은 10만 원이 더 비싸더라고요. 방값으로 내는 월 45만 원이 너무 비싼 것 같은데 거기다 한 달 35만 원으로 통신비와 책값 밥값을 다 내고 살려니 너무 부족했어요. 근데 그게 갓 고등학생을 벗어난 제게는 너무 큰 돈이라서 그 와중에 옷을 사고 싶고,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나가고 싶고, 초밥이나 파스타를 먹고 싶은 내가 너무 사치스러운 게 아닌가 싶어서 스스로를 원망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학교에 다니며 남는 시간을 풀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밤 열한 시까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혼자 자취방이 너무 살고 싶어서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방학에는 회사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나 큰 디자인 외주를 도맡아서 하고, 일하려 휴학하고,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서 학자금을 갚고 보증금을 모아 혼자 부동산을 찾아갔던 것도 기억나요. 부동산 여러 곳을 다 돌아다니며 조그만 학교 앞 자취방들을 여러 개 둘러보면서 찾아다녔어요. 작은 방이었는데도 무척 설렜습니다.
그렇게 혼자 계약서를 작성했던 것부터 이후에는 출판 계약이니 외주 계약이니 전시 계약이니 하는 것들을 이어갔던 것도, 종종 문제가 터지고 그걸 무마한다고 오만가지 정보를 알아보고 연락처를 찾아가 여쭤보고, 대면해서 상담하고, 실수하고, 악용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도와주는 분들도 만나고, 자신을 탓하고, 그렇게 아주 오래 지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잘 해결했다고 기특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돌이켜보니 기특하기보다도 그냥 기댈 데 없이 서글프고 쓸쓸하기만 해서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취하고 지낸 지 조금 되었을 때, L이 자기도 곧 처음으로 자취를 할 것인데 제게 자취방 용품들을 사려고 하니 같이 보러 가달라고 부탁했어요. 알겠다고 하고 며칠 뒤 L을 만났는데 L의 어머니께서 함께 오셨어요. 그리고 마트에서 자취 용품들을 구입하는 걸 같이 도와주셨지요. L이 토스터를 살까 하기에 제가 프라이팬이 있으면 대부분의 자취 요리를 다 해먹을 수 있으니 굳이 없어도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L의 어머니께서 우리 아가는 아침에 빵 먹는 것을 좋아해서 토스터가 있으면 좋을 거라고 하시며 토스터를 사 가셨어요. 제게 어린데도 어른스럽고 꼼꼼해서 부럽다고 하시면서요. L은 우리 엄마는 집 구할 때도 엄마가 정하고, 일주일에도 몇 번씩 자주 와 계셔서 혼자 자취하는 기분이 안 난다고 투덜거리고요.
저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 고민이나 생각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포부나 꿈이나 목표라고 하는 것이 거창하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잖아 하는 위로는 별로 위안이 되진 않습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가끔은 직업이라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저도 나름 숨 가쁘게 살고 있는데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살다 보면 숨을 쉬고 사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갑니다. 월세나 휴대폰비나 공과금을 내다보면 종종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노동해서 벌어 먹고사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로 다 흘러가는 것인지, 개인의 노동이라는 것은 참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개인이란 시스템에서 쓰는 부품이고 그중에서 청년이란 값싸게 교체 가능한 소모성 부품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고민과 생각과 감정과 사랑과 슬픔 모두 시스템에서 저렴하게 팔리는 값싼 부품으로 소모되는 것 같아요. 거기엔 사람이 아닌 팔기 좋은 이야기와 팔리지 않는 이야기만 있을 뿐인 거죠.
취직하면 더 나아질까?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기면? 여러모로 생활이든 생계든 바꿀 방도를 생각해보는데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질 상상을 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욜로라는 말을 하는데, 그냥 현재에 인간답게 사는 기준을 맞춰서 살면 미래에 더 나아질 것이 그다지 생각나지 않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잘 살 수 있는 만큼 살아보자는 것 같거든요.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지도 않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하나도 없는데도 이게 제대로 사는 건가 싶습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