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에 사람이 과자 같아.

사람은 어디로 다 떠나고 과자만 남았을까

by 비차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것은 아닐까?


편의점에서 과자를 고를 때, 더는 설레지 않는다. 군것질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어렸을 때는 분명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과자였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집에 과자를 잔뜩 사두겠다고 결심을 했었거든. 이제는 설레기 전에 미리 걱정한다. 이건 손에 잘 묻는데, 지난번에 비슷한 과자는 채 다 먹지 못했는데, 먹고 내일 후회하는 건 아닐까, 처음 보는 과자인데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과자를 사 오는 날도 있고, 사지 않는 날도 있고, 과자 생각이 안 나는 시기도 있다. 배가 고프면 과자가 먹고 싶기도 하고, 마감하면서 새벽에 배가 고플 테니까 짐작을 하며 과자를 고르다 보면 고르는 게 권태로울 때도 있다.


나는 요즘에 사람이 과자 같아.
과자보다 사람은 더 어렵고 더 복잡하지만.


어떤 과자는 포장은 정말 예쁜데 속에는 질소가 가득하고, 어떤 과자는 겉봉투는 촌스럽지만 속이 꽉 차고 질리지 않기도 하고, 포장이 겹겹이 들어가 까도 까도 껍질이라 과자가 맞는지 헷갈리는 과자도 있고, 내 취향이 아닌데도 자꾸 먹고 싶어지거나, 과자인 척하는 초콜릿이나 사탕, 어떤 과자는 이게 내 인생 과자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과자가 먼저 단종이 된다던가, 처음엔 맛있지만 먹다 보면 부담스러워지는 것도 있다. 나는 초코칩도 고래밥도 감자 칩도 다 좋아하고, 저마다의 단짠과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과자는 먹어봐야 맛있는지 안다고 생각해왔고, 먹어보고 내 취향이다 싶으면 꽂혀서 한 가지만 매일매일 사다 먹기도 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과 먹는 방식과 소화할 수 있는 종류와 양은 다 다르다.


하지만, 종이박스 안에 플라스틱 용기 속 비닐로 한 번 더 꼭꼭 숨겨져 있는 과자를 꺼낼 때, 막상 까보니 과자는 저 아래에 과자봉지의 1/3도 채워져 있지 않았을 때, 도무지 이 세상에 출시될 맛이 아니었을 때, 과자 박스 한 개를 사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안에 또 낱개 포장이 되어 있었고 고작 4 개입일 때,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이제는 그냥 일어날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과자를 믿는 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실망스러운 과자들이 많았다. 몇 번의 실망스러운 공복의 밤 이후에는 과자를 사기 전부터 포장을 살피고, 무게를 짐작하고, 흔들어보고, 몇 개입이라고 쓰여 있는지 찾아보는 과정을 거치고, 사면서도 맛있을까 고민을 하며 집었다. 맛도 양도 포장도 브랜드도 마음에 드는 과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척 실망하는 경험이 생기면 과자 자체를 끊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에 참치 통조림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본 이후로 거의 십 년간 참치 통조림을 못 먹었었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 흰 우유도 통조림 참치도 곧잘 먹지만. 먹기만 하면 배탈이 나는데도 네 번을 간 라멘집이 있다. 요전번에 먹고는 아, 그러고 보니 여긴 먹고 나면 배가 아팠지, 하는 생각을 화장실에서야 떠올렸다. 먹는 일과 만나는 일은 참 비슷하다.


사실 나는 집밥 같은 사람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아주 오래된 다정함을 그리워하면서, 나는 요즘도 Y의 생각을 한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곁을 떠나면, 그것도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은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건 너무나 괴로운 깨달음이고 무서운 경험이다. 그렇게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가 떠나간 후에 나는 멀고 가까운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사는 것은 쓸쓸하고, 이제는 모든 것이 과자를 고르는 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너무 쓸쓸해서 사람은 어디로 다 떠나고 과자만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과자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실은 나의 일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두려운 나의 일. 익숙하고 당연해지면 잃어버릴 때 너무 괴롭다는 걸 아니까.


다시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생길까, 소중하게 여기다가 실망하고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서 미리 잃어버리려 하고, 잃어버릴 거라면 만들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다시는 소중한 것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이를 악물거나, 더는 소중해 하지 않으려고 미리 벽을 치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가까워지자고 다가오면 밀어낸다. 상처받고 실망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걱정하고 집착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배가 고픈 밤은 온다. 아주 당연하게.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것은 아닐까?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무서워할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래서 그 무서움으로, 주저하면서, 나는 나를 더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이르게 나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서, 당연하게 서로를 아끼고, 그래서 더더욱 내 취향이라는 것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는 게 너무 당연하게 존재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해하지 않은 채 오래 살았다. 얇고 바삭한 것이 좋은지, 이로 깨물어야 하는 딱딱한 것은, 혹은 녹아 없어지는 부드러운 것이 좋은지, 고소하고 맵고 달짝지근한 맛 중에 무엇을 가장 선호하고, 가루가 묻는 것은 참을 수 없다든가 하는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과자를 먹고는 맛이 있는지 없는지 또 먹을 건지 먹지 않을 건지만 생각했다. 이제 나는 내 입맛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과자를 먹어보지 않고도 좋아하는 맛을 제법 잘 골라내게 되었다. 동시에 이제는 조금만 맞지 않아도 새로운 과자를 집어 드는 도전이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조금 더 일찍 내가 내 입맛을 알고 있었다면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고, 먹어보지 않고 지나친 과자 중에서 인생 과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새로운 과자에 도전하는 건 아직 두려운 일이고, 과자에 실망한 기억은 참 오래가니까.


쓸쓸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는 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염세적인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