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너머로 얼굴을 보면서 막연하게 잘 산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조금씩 멀어져 온 사람들에게. 잘 사네, 맛있는 거 먹고 다니네, 여행 다니네, 친구 만나나보다, 예뻐졌구나, 하고 묻지도 않고 막연하게 잘 지낸다며 혼자 안도하며 안부조차 묻지 않게 된 멀고도 가까운 관계들에게.
막막한 기분이었다.
좋지 않은 일은 잘 쓰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 우리들은 거의 모두 그렇다. 일주일에 맛있고 예쁜 곳을 가는 이틀을 모아 사진을 찍고, 안색이 가장 나은 하루를 골라 가장 좋아 보이는 모습을 선택해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들이 일상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ㅡ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가장 나은 부분만 뽑아내어 보여주고는 그게 내 삶인 것처럼 굴었다.
우울한 이야기는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우리 일상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사람에 치이고 짜증이 나고 지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야 하니까. 그래서 다들 귀찮게 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꾸며지지 않고 평범하고 구체적이고 찌질한 모습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들은 잘 삼켜야 멋지게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울한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걱정을 빙자해서 이용하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들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기 쉽다. 우울하면 상처에 날카로워지는데 그때 그어지는 상흔은 평소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사람이 무섭거나, 의미가 없어지거나 했다. 우울을 말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다. 소용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법한 일이지만, 너는 상처를 받지 않을 줄 알았어. 너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예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 사람의 옛 연인 전용의 서브폰의 존재와 전 연인의 반동거 사실을 내가 알게 된 직후에. 자신은 전 연인이 매일 집을 치워주고 요리를 해주고 매일 안부를 묻고 세탁기를 돌려주지만 전 연인과 자지 않아서 떳떳하다며 그 사람과 다정하게 나눈 카톡을 보여주었다. 충격이 도가 지나치면 숨이 안 쉬어진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건 누가 보아도 상처받을 내용 아니냐, 되물었더니 그 사람이 말했다. 맞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너는 안 그럴 줄 알았어. 늘 괜찮았으니까.
나는 그녀와 그녀의 행로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저렇게 못 할 텐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댓글을 달고 조롱하고 기사가 뜨고 그녀를 두고 소설을 쓰고. 그래도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했다. 나는 만화에 좋지 않은 댓글 하나만 달려도 속을 끓이고 삼 일간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던데. 논란거리가 될 것 같은 이야기는 정말 오래 고민하게 되던데. 정말 대단하다. 멋있다. 남다르다. 하지만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법한 일에,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다시 깨달았다. 당연히 상처가 되었겠구나. 그걸 당연하게 여겨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래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 상처받지 않고 오연한 태도로 상황을 통제하리라 여겼던 것은 보는 사람들의 오인이었다.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우울도 상처도 없는 것이 아닌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우울과 참담을 다 알 수는 없을지라도 손을 잡아서 같이 건져 올리고 옷에 물기를 털어줄 수 있다면 좋았을걸. 잃고 나서 빈 자리가 더 커진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은 돌이킬 수 없기 전에 막연하게 잘 산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거. 잠은 잘 자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별일은 없는지, 사는 것이 괜찮냐고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화를 내고 가끔 만나 손을 잡아보는 거. 이마를 맞대고 울 수 있다면 울어보는 거. 우리 좀 살자. 사는 김에 잘 살자. 별것 아닌 것에도 우울에도 분노에도 목소리를 내자. 지금 슬프다고 화가 난다고 비참해져도 진흙탕까지 아등바등 발버둥이라도 쳐 보자.
어떻게 살고 있어? 사는게 힘들진 않아?
살아서 울자. 손잡고 울자.